33년의 군복을 내려놓던 날
나라를 지켜온 당신, 이제는 당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최현주
2026년 8월 31일 월요일.
남편이 전직교육 신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1993년 입대해 32년 6개월. 33년에 가까운 군 생활의 마지막 자락에 선 날이었다.
그날 나는 남편의 군복을 정리했다.
부대마크와 명찰이 박음질된 군복에 가위를 대는데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는 입지 않을 옷이고 정리해야 할 옷인데, 막상 자르려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한 벌의 군복일 뿐인데 그 속에 한 남자의 청춘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젊은 날의 꿈과 열정, 수많은 훈련과 임무, 땀과 눈물, 군인으로서 지켜온 책임과 명예, 그리고 그 군복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온 우리 가족의 세월까지.
군복에 담긴 32년 6개월
남편은 1993년 군에 입대했다.
특전사에서 약 13년, 이후 27사단과 15사단에서 약 20년을 복무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나보다 덩치도 작았던 동창 친구가 훗날 군인이 되어 이렇게 오랜 세월 한길을 걸어갈 줄 그때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젊은 날 꿈과 열정을 품고 군인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 길을 걷기 위해 또 다른 꿈과 열정은 마음 한편에 접어두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쌓였다. 청년은 중년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아이들이 생겼으며,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남편의 군복도 여러 번 바뀌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책임을 끝까지 다해야 한다는 군인의 마음이었다.
남편은 군 생활 중 남침한 무장간첩과의 교전을 경험했다. 훈련 중 사고로 함께하던 부대원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본인 역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언제, 어떤 용도로 쓰이게 될지 모르는 군번줄을 목에 건 채 살아온 시간이었다.
가족인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러한데, 정작 가족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가슴속에 묻어둔 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예전에 한 사단장님이 군인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읽었던 내용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다.
군인에게 군복은 때로는 정복이 되고, 전투복과 훈련복이 되며, 때로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는 옷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남편에게 군복이 명예와 책임의 상징이었다면, 군인의 아내인 나에게 군복은 자랑스러움과 두려움이 함께 묻어 있는 옷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같은 말을 되뇌었다.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훈련이 길어지고 연락이 늦어지는 날이면 마음을 졸였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도했던 날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군인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을 기다리고,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이들도 그렇게 아빠를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가족에게 중요한 날에도 함께하지 못할 때가 있었고, 아이들이 자라는 순간순간 비어 있던 아빠의 자리도 있었다.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니라, 군인으로서 누군가는 반드시 지켜야 할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근무지를 넘어 삶의 터전이 된 화천
남편이 27사단과 15사단에서 복무하며 보낸 약 20년.
그 시간 동안 화천은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근무지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이웃을 만나고, 웃고 울며 하루하루를 살아낸 삶의 터전이었다.
남편에게 화천은 수많은 훈련과 임무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일 것이다. 내게는 남편을 기다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한 가정을 꾸려온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이곳에 왔을지 모르지만, 긴 세월이 흐르고 보니 화천은 어느새 우리 가족의 인생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군인과 군인가족,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서로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곳.
그래서 이제 ‘화천’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남편의 근무지보다 먼저 ‘우리 가족이 함께 살아낸 세월’이 떠오른다.
다시 군복을 정리하던 그날.
부대마크와 명찰을 하나씩 떼어내며 생각했다.
남편의 지난 32년 6개월을 단순히 ‘군 생활’이라는 말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청춘과 시간, 땀과 열정을 바쳐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끝까지 지켜낸 한 편의 인생이었다.
계급장은 떼어낼 수 있다.
부대마크도 떼어낼 수 있다.
군번줄도 이제 내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지켜온 군인의 명예와 책임감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남편의 인생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훈장으로 남을 테니까.
그래서 이제야 마음 놓고 말해본다.
“여보,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무사히 우리 곁으로 돌아와 줘서 고마워.”
이제는 조금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
군복을 정리하고 나니 군화가 눈에 들어온다.
내일은 그 군화도 버리려고 한다.
그 군화를 신고 얼마나 많은 산을 올랐을까. 얼마나 많은 눈길과 흙길을 걸었으며, 혹한과 폭염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새벽과 밤을 뛰었을까.
가족이 편히 잠든 시간에도 그 군화를 신고 어디선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 군화를 벗어도 좋겠다.
그동안 나라와 부대를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뛰었으니 이제부터는 조금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아침마다 서둘러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머리카락도 마음껏 길러 펌과 염색도 해보고, 해보고 싶었다면 귀도 한번 뚫어보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이제 사복도 많이 필요할 테니 옷값은 좀 들게 생겼다.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겠다.
그리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자신의 행복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가족과 느긋하게 밥 한 끼 먹고, 아이들과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아무 일정 없는 아침에 천천히 커피 한잔 마시는 것.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런 평범한 하루가 어쩌면 군인가족인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행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제 아침 시간이 조금 여유로워졌으니 아이들 등교도 시켜주면 좋겠다.
33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나라가 당신을 필요로 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가족이 당신을 조금 더 필요로 할 차례니까.
여보.
군복을 벗는다고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계급도, 보직도, 임무도 아닌 오롯이 당신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국가와 부대를 위해 살아온 시간만큼 앞으로는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
가족에게 미안했던 시간만큼 우리와 많이 웃고, 미뤄두었던 일도 하나씩 해보고, 가보고 싶었던 곳도 함께 가고, 배우고 싶었던 것도 배우며 살았으면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의 여유도 마음 편히 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먼 훗날 오늘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군인으로 살아온 내 인생도 참 좋았고, 그 이후의 인생도 참 행복했다.”
그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아내인 나는 참 행복할 것 같다.
오늘도 화천에서는 누군가 군복을 입는다
오늘 우리 집에서는 한 사람이 33년에 가까운 세월 만에 군복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화천의 어느 집에서는 누군가가 군복을 입고 현관문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아내와 남편, 부모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군인의 아내로 살아보고 나서야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당연한 출근처럼 보이는 그 뒷모습 뒤에는 가족의 기다림이 있고, 우리가 평범하게 보내는 하루 뒤에는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누군가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남편에게 보내려던 감사의 마음을 오늘은 조금 더 넓혀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든 군인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그 곁에서 기다리고 걱정하며, 때로는 빈자리까지 묵묵히 감당해 온 모든 군인가족에게도 같은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 남편에게.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나보다 덩치도 작았던 그 동창 친구가 이렇게 대견한 사람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당신이 국가와 가족을 위해 흘린 땀과 아무 말 없이 가슴속으로 삼켜야 했던 수많은 순간을 내가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기억할게.
우리 아이들에게도 오래 이야기해 줄게.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그 긴 세월을 살아왔는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보냈는지를.
32년 6개월 동안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당신의 삶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여보, 군복은 이제 내려놓아도 돼.
그동안 당신이 나라를 지켰으니,
이제부터는 우리가 당신 곁을 지킬게.
2026년 8월 31일
군인의 동창이자 친구, 그리고 아내
최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