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왜 국회의원 선거에 ‘화천을 기반으로 한 후보’는 보이지 않는가
― 2028년 제23대 총선, 30여 년간 끊긴 화천 정치의 맥을 이을 때다
국회의원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화천 유권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인근 시·군의 정치 동향으로 쏠린다.
현재의 춘천·철원·화천·양구 을 선거구는 물론, 과거 철원·화천·양구·인제를 하나로 묶었던 거대 통합 선거구의 역사를 돌아보면 철원과 양구, 인제, 홍천 등을 기반으로 한 인사들은 꾸준히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해 왔다.
철원에서는 이용삼·박세환 전 의원을 거쳐 현 한기호 의원에 이르기까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들이 선거의 중심축을 형성해 왔다. 양구 출신 정만호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고, 과거 선거구에 포함됐던 인제에서는 박병용 후보, 홍천에서는 황영철·조일현 후보 등이 각 지역의 정치적 기반을 바탕으로 본선 무대에 나섰다.
그러나 화천은 다르다.
선거구의 명칭과 경계가 여러 차례 바뀌고 정당과 후보도 달라졌지만, 화천에 삶과 조직의 뿌리를 두고 화천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출마한 인물은 30여 년 동안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왜 화천은 국회의원 후보를 배출하는 정치적 주체가 되지 못했는가. 왜 화천 유권자들은 매번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한 후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는가.
김재순·박동일 이후 끊어진 화천 정치의 맥
화천에도 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국회에 도전한 인물들이 있었다.
1988년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재순 후보와 박동일 후보가 함께 철원·화천 선거구에 출마했다. 김재순 후보는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박동일 후보는 무소속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했다.
김재순 후보는 제13대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의장에 올랐고,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도 철원·화천 선거구에 출마해 다시 당선됐다. 김 전 의장은 당시 화천을 주요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박동일 후보 역시 화천 출신으로 재경화천군민회장을 지내는 등 화천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국회 진출에 도전했다. 당선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화천을 기반으로 중앙정치의 문을 두드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박동일 전 재경화천군민회장의 도전과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제14대 총선 당선을 끝으로, 화천을 실질적인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국회의원 후보의 계보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1993년 보궐선거 이후에는 이용삼·박세환 전 의원을 중심으로 철원 기반의 정치 구도가 형성됐고, 이후 한기호 의원이 그 중심축을 이어갔다. 선거구가 확대되거나 다시 조정되는 과정에서는 양구·인제·홍천·춘천 등을 기반으로 한 후보들도 경쟁에 합류했다.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전성, 국민의힘 한기호, 무소속 이호범 후보가 출마했지만, 화천을 삶과 정치의 기반으로 성장한 후보는 보이지 않았다.
제14대 총선이 치러진 1992년부터 제22대 총선이 치러진 2024년까지 32년이다. 2026년 현재로는 34년째다. 선거구의 명칭과 경계, 정당과 후보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화천이 자체적인 정치 기반을 가진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출생지가 아니라 정치적 기반의 문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용삼·박세환 전 의원의 출생지는 일부 공식 자료에 화천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용삼 전 의원은 철원 김화중·김화공고를 졸업했고, 박세환 전 의원도 철원중·철원고를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성장 과정과 학연, 생활권, 선거조직과 정치적 기반은 철원에 가까웠다.
따라서 출생지만을 근거로 두 사람을 ‘화천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으로 분류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는 정치 현실과 거리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화천 후보’는 출생신고서에 화천이라고 적힌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출생지가 어디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살아왔고 누구와 삶을 나눴으며, 어느 지역의 주민과 조직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느냐는 점이다.
출생지가 화천이 아니더라도 화천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며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화천의 현안을 자신의 정치적 과제로 삼아 국회에 도전한다면 충분히 ‘화천을 기반으로 한 후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사람은 출생지만 화천인 정치인이 아니다. 화천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화천 주민의 목소리와 지역 현안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국회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인구 논리에 갇힌 정치적 소외
화천에서 국회의원 후보가 나오기 어려운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인구와 조직의 열세다.
현재 선거구는 춘천 일부 지역과 철원·화천·양구를 하나로 묶고 있다. 당원 수와 여론조사, 조직력이 큰 영향을 미치는 정당 경선에서 인구가 적은 화천을 기반으로 한 정치 신인은 출발선부터 불리할 수밖에 없다.
각 정당의 공천 심사 역시 ‘본선 경쟁력’과 ‘당선 가능성’을 앞세워 인구가 많거나 당원 조직이 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후보에게 무게를 싣기 쉽다. 화천 후보는 능력과 정책을 제대로 평가받기도 전에 인구와 조직의 한계부터 지적받는다.
이러한 구조가 반복되면 작은 지역은 후보를 배출하는 정치적 주체가 되기 어렵다. 결국 인구가 많고 조직력이 강한 지역에서 결정된 후보를 받아들이고 표를 보태는 역할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인구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화천 정치의 인재 발굴과 육성, 도전의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방의원과 단체장, 정당과 사회단체 등에서 경험과 역량을 쌓은 인재가 더 큰 정치무대로 나아가는 사다리가 작동하지 않았다. 지역 안에서 치러지는 선거에는 익숙했지만, 화천의 인재를 국회의원 경선 무대에 세우기 위해 장기적으로 준비하고 힘을 모으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정치인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역 현안을 공부하고 주민의 신뢰를 얻으며 정당 안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한다. 지방정치에서 성과를 축적하고 중앙정당과 국회를 상대로 정책 역량을 인정받는 과정도 필요하다.
김재순과 박동일 이후 그 뒤를 이을 사람을 발굴하고 키우지 못한 책임은
어느 한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게만 돌릴 수 없다. 지역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 유권자 모두가 함께 성찰해야 할 문제다.
화천의 현안은 화천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화천을 기반으로 한 국회의원 후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배타적인 소지역주의나 단순한 고향 타령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출신지와 관계없이 선거구 전체를 균형 있게 대변해야 한다.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의원이라도 화천의 현안을 충실하게 해결하고 주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한다면 마땅히 평가받아야 한다. 출신지나 학연만으로 정치인의 능력과 책임을 재단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화천의 역사와 현실을 몸으로 겪고 주민들의 정서를 깊이 이해하는 정치인이 중앙정치 무대에 필요하다는 요구까지 소지역주의로 몰아서는 안 된다.
화천은 수십 년 동안 국가 안보를 위해 각종 군사규제와 재산권 제한을 감내해 왔다. 화천댐 건설과 수몰의 아픔, 댐으로 인한 희생과 정당한 지역 환원, 군부대 개편에 따른 지역경제 위축,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위기까지 화천의 생존이 걸린 현안이 산적해 있다.
광덕터널과 광역교통망 확충, 접경지역 규제 완화, 군 유휴부지 활용, 민군 상생, 화천댐의 정당한 권리 확보 등도 중앙정부와 국회의 결단 없이는 풀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이러한 현안은 선거 때 화천을 찾아 몇 마디 약속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화천의 역사와 특수성을 깊이 이해하고 주민의 응어리를 가슴에 품은 채 중앙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끈질기게 논리를 세우고 싸울 정치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화천의 현안은 화천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목소리를 국회까지 가져갈 사람도 화천 스스로 키워야 한다.
당선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도전’
당장 화천을 기반으로 한 국회의원을 만들어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인구와 당원 수, 조직력과 정당 구조를 고려하면 본선 당선은커녕 당내 경선의 문턱을 넘는 것조차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당선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로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면 화천의 정치적 지분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후보가 나서야 정당도 화천을 바라본다. 경선이 이뤄져야 화천의 현안이 공약에 반영되고 지역의 요구가 중앙정치의 의제로 올라간다. 당장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한 번의 도전은 다음 도전자를 만들고, 축적된 경험은 화천 정치의 자산으로 남는다.
“다음에는 경선 후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어느 주민의 나지막한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화천이 더 이상 수동적인 ‘표의 공급처’에 머물지 말고, 후보를 세우고 정책을 제안하는 정치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각 정당은 인구가 적은 접경·인구감소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 신인이 경선에서 일방적으로 불리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 신인 가산점과 함께 소외지역의 정치적 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는 공천 기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화천은 장기적인 정치 인재 육성에 나서야 한다. 지방의원과 단체장, 정당과 사회단체에서 역량을 검증받은 인재가 지역 현안에 대한 정책 전문성을 쌓고 중앙정치로 진출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지역구 경선뿐 아니라 비례대표와 중앙당 정책조직 등 다양한 진출 경로도 모색해야 한다.
셋째, 유권자도 화천의 정당한 정치적 지분을 요구해야 한다. 각 정당이 공천 과정에서 화천을 가볍게 여기지 못하도록 “화천의 목소리를 대변할 인물을 발굴하고 세우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후보가 없다고 체념할 것이 아니라, 후보가 나올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을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2028년 제23대 총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제 시선은 2028년 4월 12일 치러질 예정인 제23대 국회의원 선거로 향한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 후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역 현안을 공부하고 주민의 신뢰를 얻으며 정당 안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도 결코 이르지 않다.
제23대 총선에서도 화천을 기반으로 한 인물이 정당 경선에조차 나서지 못한다면 정치적 공백은 다시 4년 연장된다. 화천은 다른 지역에서 결정된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하는 데 그칠 것인지, 아니면 지역의 이름과 현안을 걸고 당당히 도전할 후보를 스스로 키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화천을 기반으로 한 후보가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능력과 도덕성, 정책과 비전은 더욱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선택할 화천 후보 자체가 없는 현실과, 화천 후보를 포함한 여러 인물을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박동일 전 재경화천군민회장의 도전과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제14대 총선 당선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화천 정치의 끊어진 맥을 다시 이어야 한다.
2028년 제23대 총선에서는 적어도 여야의 공천 경쟁과 경선 홍보물에서 화천을 삶과 정치의 기반으로 삼은 인물의 이름과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당선은 그다음 문제다. 먼저 도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정치적 맥이 이어지고, 화천의 현안도 중앙정치의 의제로 올라갈 수 있다.
화천 정치의 새로운 출발은 금배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화천에서 살아온 사람이 화천의 이름과 현안을 품고 제23대 총선의 경선 무대에 당당히 서는 것, 바로 그 첫 도전에서 시작된다.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