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오찬 참석기] 향군을 대표해 선 자리, 가슴에는 화천을 품었다
-신상태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전근표 익산시재향군인회장과 청와대 보훈 오찬 참석
-“보훈은 과거를 기리는 의례가 아니라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오늘의 책임”
지난 8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대표해 참석했다.
이날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서는 신상태 본회장과 필자, 전근표 익산시재향군인회장이 함께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본회 이사이자 강원특별자치도재향군인회 이사로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보훈단체 관계자 등 18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국가 차원의 예우와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감사 영상 상영, 격려 말씀, 오찬과 환담, 감사 공연과 소감 발표 등이 이어졌다.
향군복을 입고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대표해 참석한다는 것은 분명 영예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영빈관에 들어서는 순간, 개인적인 기쁨보다 먼저 마음에 떠오른 이름은 ‘화천’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대표해 그 자리에 참석했지만, 가슴에는 수복지역 화천의 역사와 군민들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내 곁에는 아버지와 화천이 함께 있었다
그날의 자리는 나 혼자만의 자리가 아니었다.
6·25전쟁에 참전해 자유대한민국을 지킨 국가유공자이자 육군 소령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책임을 가문의 소중한 가치로 이어온 가족이 함께 서 있는 자리였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두 아들로 이어지는 우리 가족은 3대 향군 가족이다. 나 역시 육군 병장으로 복무했고, 화천군재향군인회장을 8년간 맡아 지역 안보와 보훈, 향군 발전을 위해 일해 왔다. 현재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본회 이사와 강원특별자치도재향군인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 세대가 목숨을 걸고 지킨 나라에서 그 아들이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을 위한 국가적 예우의 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은 남다른 감회를 안겨줬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엄중한 사실이었다.
화천의 광복은 남달랐다
제81주년 광복절을 맞는 화천의 감회는 다른 지역과 같을 수 없다.
화천은 일제강점기 강원지역에서도 뜨거운 항일독립운동이 펼쳐진 고장이다. 박장록 선생을 비롯한 상서면 주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고, 많은 주민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화천 선열들의 용기와 희생은 오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지역사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화천은 38선 이북에 놓이면서 곧바로 자유대한민국의 품에 안기지 못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주민들은 북한 정권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6·25전쟁의 참혹한 소용돌이까지 겪어야 했다.
화천은 일제로부터 해방됐지만, 주민들이 자유대한민국의 품에서 광복의 의미를 온전히 체감하기까지 전쟁과 수복이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견뎌야 했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됐고, 수많은 장병과 주민이 희생됐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화천의 산과 강, 골짜기 곳곳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서려 있다.
그렇기에 화천에서 광복과 보훈은 역사책 속에만 존재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도 주민들의 삶과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현실이며, 우리가 자유대한민국에 살고 있음을 더욱 감사하게 만드는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다.
보훈은 기억에서 시작해 책임으로 완성된다
보훈은 국가유공자에게 훈장을 드리고 기념일에 머리를 숙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잊지 않고, 그 가족들이 합당한 존경과 예우를 받도록 하는 것이 보훈이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 평화를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는 것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다.
국가가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을 초청해 감사와 존경을 전하는 것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되새기고, 그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엄숙한 자리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국내 최대의 안보·보훈단체로서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알리고, 참전용사와 제대군인, 보훈가족의 명예와 권익을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이번 오찬에 신상태 본회장, 전근표 익산시재향군인회장과 함께 향군을 대표해 참석한 것도 그러한 책임을 다시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됐다.
향군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기억을 보존하면서 미래 세대에게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전해야 한다. 안보를 정쟁의 언어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평온한 일상을 지키는 공동의 책임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화천의 독립·호국사를 제대로 기려야
화천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을 외친 선열들의 역사가 있고, 6·25전쟁과 수복 과정에서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있다. 또한 전쟁의 상처를 딛고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군 주민들의 강인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화천만의 독립운동사와 호국·수복사는 아직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광복절과 현충일, 6·25전쟁 기념일을 중앙이나 도 단위 행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 지역의 독립운동가와 참전유공자, 보훈가족을 직접 찾아 예우하고, 화천의 독립·호국·수복 역사를 주민과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지역 차원의 기념사업이 필요하다.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공동체는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기 어렵다. 화천의 선열들이 무엇을 위해 태극기를 들었는지, 수많은 장병과 주민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는지를 다음 세대가 알아야 한다.
그것이 화천다운 광복절이며, 접경지역이자 수복지역인 화천이 대한민국에 전해야 할 특별한 역사적 메시지다.
자유대한민국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다시 생각했다.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말하고 일하며 가족과 함께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희생을 잊는 순간 보훈은 형식에 머물고, 역사를 외면하는 순간 자유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광복절은 과거의 해방만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를 지켜야 하며, 다음 세대에 어떤 대한민국을 물려줘야 하는지를 되묻는 날이다.
나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대표해 그 자리에 참석했지만, 마음속에는 아버지와 우리 가족, 그리고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견디며 자유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화천이 함께 있었다.
청와대에서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다짐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명예가 잊히지 않도록 하겠다. 화천의 독립운동과 호국·수복의 역사가 합당한 평가와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 그리고 우리가 자유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감사함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겠다.
보훈은 과거를 추억하는 데 머무는 일이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내일의 자유를 지키는 우리의 책임이다.
김용식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본회 이사
강원특별자치도재향군인회 이사
전 화천군재향군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