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별기고]
"청와대에 화천을 데리고 갑니다"
-국가유공자·보훈가족 초청 오찬에 참석하며, 광복 81주년 수복지역 화천에서 다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오늘 8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 참석한다.
광복절을 이틀 앞두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과 그 가족들이 함께하는 뜻깊은 자리다.
초청 소식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개인적인 감회나 영예가 아니었다.
화천이었다.
내가 살아온 이 땅의 지난 역사와 오늘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대한민국의 소중함이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 혼자 청와대에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화천을 데리고 간다.
1919년, 화천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었다
화천의 광복사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1운동 당시 화천에서도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화천지역 만세운동에는 3,500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며, 175명이 검거돼 당시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도 통신도 변변치 않았던 산골 화천에서 수천 명의 주민이 거리로 나섰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역사가 아니다.
잡혀갈 것을 알면서도 태극기를 들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어쩌면 아주 평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나라에서 내 생각을 말하고,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바로 오늘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일상이다.
일제는 화천의 강까지 이용했다
그로부터 20년 뒤, 화천에는 또 하나의 아픈 역사가 시작됐다.
화천댐과 화천발전소다.
일제는 1939년 북한강을 막아 대규모 수력발전시설 건설에 착수했다.
댐과 발전시설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과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그곳에는 집이 있었다.
논과 밭이 있었고 마을길이 있었다.
사람들의 삶과 추억이 있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화천댐의 물 아래에는 그렇게 사라진 고향이 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뒤 화천댐과 발전소는 6·25전쟁의 전략적 요충지가 됐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분단과 전쟁, 그리고 수복.
화천댐과 화천발전소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겹쳐 있다.
나라가 광복됐지만, 화천은 자유를 더 기다려야 했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나라가 광복됐다.
그러나 화천의 역사는 조금 달랐다.
광복과 함께 38선이 그어졌고 화천은 그 북쪽에 놓였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기쁨도 잠시, 화천은 북한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광복은 찾아왔지만 자유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자유까지 곧바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이 땅에 다시 포성이 울렸다.
화천댐과 화천발전소는 전쟁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됐고, 화천의 산과 강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수많은 젊은이가 이곳에서 피를 흘렸다.
전쟁 과정에서 화천은 수복됐고, 1953년 정전으로 오늘의 군사분계선이 자리 잡았다. 이어 1954년 11월 수복지구의 행정권이 대한민국 정부에 공식 이관됐다.
그래서 ‘화천은 광복 8년 뒤 다시 광복됐다’고 역사적 사실처럼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1945년 광복에서 1953년 정전까지 8년.
화천 사람들에게 그 시간은 분명 특별했다.
나라가 광복된 뒤에도 자유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던 세월이었다.
나는 그것을 화천이 겪어야 했던 ‘뒤늦은 광복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천에서 광복절은 남다르다
화천은 광복과 분단을 함께 기억한다.
전쟁과 수복도 함께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도 휴전선과 맞닿아 살아가는 접경지역이다.
오랜 세월 국가안보를 위해 많은 불편과 규제를 감내하면서 군과 주민이 일상을 함께해 온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천에서 맞는 광복절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가끔 너무 평범해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사실 하나를 생각한다.
아침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눈을 뜨는 것.
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믿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것.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신문을 만들고 글을 쓸 수 있는 것.
선거에서 내 뜻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것.
우리는 이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화천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목숨을 걸고 되찾았고, 또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지켜냈기에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그래서 오늘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이 함께하는 자리에 참석하며 그 평범한 사실에 다시 감사하고 싶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보훈은 기억하는 것이다
보훈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하고 그 뜻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러나 보훈은 과거를 기억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는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되묻는 일이기도 해야 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어떤 대한민국을 물려줘야 할까.
광복절을 앞두고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이 함께하는 자리에 참석하면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리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오늘의 정치로 이어진다.
정치는 ‘사랑싸움’이어야 한다
나는 정치가 ‘사랑싸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당과 야당이 싸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경쟁과 논쟁은 당연하다.
생각이 다르면 논쟁해야 하고, 잘못된 정책이라고 판단하면 치열하게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는 분명해야 한다.
누가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는가.
누가 국민을 더 사랑하는가.
누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손을 먼저 잡는가.
누가 지방과 접경지역의 아픔을 더 깊이 이해하는가.
누가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대한민국을 물려줄 것인가.
이것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정치여야 한다.
상대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겨루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겨루는 정치.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힘을 쏟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이라도 더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경쟁하는 정치.
나는 그것을 ‘사랑싸움’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 싸움이라면 얼마든지 치열해도 좋다.
화천은 이념의 충돌이 무엇을 남기는지 알고 있다
화천은 이념의 충돌과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몸으로 겪은 고장이다.
한반도가 갈라지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이 살아가던 마을과 논밭은 하루아침에 전쟁터가 됐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족을 잃었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수많은 젊은이가 화천의 산과 강에서 목숨을 잃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평화도 자유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정치가 국민을 편으로 갈라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기 시작하면 그 상처는 결국 평범한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정치는 더 많이 싸우느냐, 덜 싸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의 문제다.
국민을 위해 싸워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경쟁해야 한다.
오늘, 청와대에 화천을 데리고 간다
오늘 청와대 오찬장에는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이 함께할 것이다.
그 자리에 앉으면 나는 조용히 화천을 생각하려 한다.
1919년 봄,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던 화천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다.
일제의 댐 건설로 고향과 삶의 터전을 물속에 내려놓아야 했던 주민들을 떠올릴 것이다.
1945년 나라가 광복됐지만 38선 북쪽에서 또 다른 세월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6·25전쟁 당시 화천의 산과 강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피 흘렸던 수많은 젊은 장병들을 생각할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폐허 위에 다시 집을 짓고 논밭을 일구며 오늘의 화천을 만들어 온 주민들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휴전선과 마주하며 대한민국의 최전방에서 살아온 접경지역 주민들의 삶도 마음에 담고 싶다.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을 위한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결국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 혼자 청와대에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복지역 화천을 마음에 품고 간다.
대한민국이 있어서 감사하다
이틀 뒤면 광복 81주년이다.
오늘 청와대에서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을 만나고, 이틀 뒤 화천에서 광복절을 맞는다.
그 사이에서 나는 다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있어서 감사하다.
오늘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내 생각을 글로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자유롭게 신앙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자유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어쩌면 이 평범한 감사가 광복절의 가장 깊은 의미인지도 모른다.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되찾으려 했고, 국가유공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도 결국 우리와 후손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정치는 증오를 경쟁하기보다 사랑을 경쟁했으면 한다.
누가 국민을 더 사랑하는가.
누가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는가.
누가 다음 세대의 내일을 더 책임질 것인가.
그것을 놓고 여야가 마음껏 경쟁했으면 좋겠다.
그 아름다운 ‘사랑싸움’이라면 얼마든지 치열해도 좋다.
수많은 희생으로 되찾고 지켜낸 자유대한민국에서 우리가 해야 할 정치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민주주의도 결국 그곳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 8월 13일.
청와대로 향하며 다시 한번 화천을 마음에 담는다.
대한민국이 광복되던 날에도 자유를 더 기다려야 했던 땅, 화천.
그 긴 기다림과 희생 끝에 우리가 얻은 오늘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틀 뒤 맞는 광복절을 앞두고 한 가지를 더 소망한다.
이 나라의 정치가 서로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겨루는 싸움이 아니라, 국민과 대한민국을 누가 더 사랑하는지를 겨루는 아름다운 ‘사랑싸움’이 되기를.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