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역 개통, '역세권 개발' 넘어 '체류형 경제'로 판 짜야
류종현 강원대 객원교수 기고… "철도는 사람을 데려올 뿐, 머물게 하는 것은 도시의 정책 역량"
동서고속화철도 개통과 화천역 신설이 가시화되면서 화천의 미래 발전 전략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철도라는 새로운 교통 인프라를 단순한 접근성 개선에 그칠 것인지, 지역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로 만들 것인지는 지금부터의 준비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지역경제 전문가인 류종현 강원대학교 객원교수(한국지역경제학회장)는 최근 기고를 통해 "화천역 시대의 성공은 역을 얼마나 크게 개발하느냐가 아니라 방문객이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소비하며, 다시 찾는 지역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철도 개통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기존의 '역세권 개발'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화천 전체를 하나의 관광·문화·생활권으로 연결하는 '체류형 경제' 전략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지역경제 전문가인 류종현 강원대학교 객원교수(한국지역경제학회장)
"길은 양방향이다"… 철도는 기회이자 위기
철도 개통은 대부분 지역에서 기대감을 불러온다. 접근성이 개선되면 관광객이 늘고 기업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류 교수는 이러한 기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길에는 반드시 두 개의 방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화천으로 오는 길이 가까워지는 만큼 화천 주민이 춘천과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방문객이 늘어나는 동시에 소비와 인구가 외부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커진다는 의미다.
지역경제에서 흔히 말하는 '빨대 효과(Straw Effect)'다.
지역에 머물 이유가 없다면 철도는 사람을 데려오는 통로가 아니라 지역의 소비와 인재를 외부로 빼내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천이 지금 고민해야 할 질문은 "역 주변에 무엇을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왜 화천에 머물러야 하는가"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를 더 보내고 싶고, 하룻밤을 묵고 싶으며, 다시 가족과 함께 찾고 싶은 이유를 만드는 것이 철도 시대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보석은 많은데 목걸이가 없다"… 화천 자산을 연결해야
류 교수는 화천이 전국 어느 지자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관광·문화 자원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겨울 산천어축제와 여름 토마토축제, 북한강 수변과 평화의 댐, DMZ 평화관광 자원,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파크골프 기반시설, 스포츠 전지훈련 여건, 청정 산림과 농산물, AI와 연계할 수 있는 교육 자원까지 다양한 경쟁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자산이 각각 존재할 뿐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를 "보석은 많지만 아직 하나의 목걸이가 되지 못한 상태"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산천어축제를 찾은 관광객이 읍내 상권과 북한강 관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파크골프 이용객 역시 숙박과 음식점 이용 등 지역 소비로 연결되는 비율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화천역은 새로운 역세권 상권을 조성하는 공간이 아니라 화천 전체를 연결하는 여행의 관문(Gate)이자 지역 자산을 하나의 관광 동선으로 엮는 '실'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역세권 개발의 성공 기준은 역 주변 건물이 아니라 역에서 출발한 방문객이 화천 전역을 얼마나 이동하고 소비하느냐에 있다는 설명이다.
체류를 만드는 '앵커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지역 자산을 연결하는 것과 함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대표 콘텐츠, 즉 '앵커 프로젝트(Anchor Project)' 발굴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 교수는 화천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북한강 수변공간이다.
단순한 산책 공간이 아니라 숙박과 음식, 문화공연, 야간 콘텐츠, 레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체류형 관광 거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대한민국 대표 파크골프 도시다.
단순히 경기장을 늘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전국대회 유치와 지도자 교육, 전지훈련, 스포츠관광, 관련 산업을 함께 육성해 전국 최고 수준의 파크골프 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셋째는 AI와 DMZ를 결합한 미래체험도시다.
화천의 교육 인프라와 평화 콘텐츠를 결합해 전국 학생과 가족 단위 관광객이 찾는 미래교육 체험공간으로 육성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다만 그는 "세 가지를 모두 추진하기보다 화천이 가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한 분야를 선택해 집중 투자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고 조언했다.
행정이 먼저 답을 정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류 교수는 기존 행정 방식의 전환도 주문했다.
지금까지는 지자체가 계획을 먼저 수립한 뒤 기업에 투자를 요청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업과 시장의 아이디어를 먼저 듣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관광·스포츠·교육·콘텐츠 기업을 대상으로 "당신이라면 북한강에서 어떤 사업을 하겠는가", "파크골프를 활용해 어떤 산업을 만들겠는가", "AI와 DMZ를 결합하면 어떤 프로그램이 가능하겠는가"를 먼저 묻는 행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간이 시장성을 제시하고 행정이 제도와 기반시설을 지원하는 구조가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작게 연구하고, 제대로 골라, 크게 투자하라"
재정 운용 방식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내놓았다.
처음부터 수억 원 규모의 용역이나 대형 시설사업을 추진하기보다 소규모 정책연구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도 개통 이후 방문객 이동 동선을 예측하고, 화천이 보유한 자산 가운데 가장 경쟁력이 높은 분야를 비교·검증하며, 기업과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검증을 통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업을 선정한 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투자해야 예산 낭비를 줄이고 사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방문객 수보다 체류시간이 중요하다"
류 교수는 화천역 시대의 성공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몇 명이 기차에서 내렸는가보다 몇 명이 읍내까지 이동했는가, 몇 시간을 화천에서 보냈는가, 얼마를 소비하고 다시 찾아왔는가가 훨씬 중요한 지표"라고 말했다.
방문객 수는 늘어났지만 숙박과 소비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철도는 사람을 데려오는 역할까지만 한다.
그 이후 사람들을 머물게 하고 소비하게 만들며 다시 찾게 만드는 것은 도시의 정책과 콘텐츠, 그리고 지역사회의 준비에 달려 있다는 것이 류 교수의 핵심 메시지다.
화천역은 '철도역'이 아니라 화천의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
지역 정가와 행정 전문가들도 이번 제언에 공감하며 화천군과 화천군의회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철도 개통 효과를 지역 전체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체류형 관광 및 지역경제 활성화 조례'를 조속히 제정하고, 행정과 의회, 전문가, 기업,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화천역 시대 대비 민·관·학·연 전담 TF'를 구성하는 등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다.
동서고속화철도는 국가가 건설하지만, 그 효과를 지역의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결국 지역의 선택에 달려 있다.
화천역은 단순히 새로운 철도역 하나가 생기는 사업이 아니다. 화천의 관광과 산업, 상권과 농업, 교육과 문화가 하나로 연결되는 새로운 성장 플랫폼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스쳐 지나가는 경유지에 머물 수도 있다.
류 교수는 "화천역 시대를 여는 첫 문장은 '화천에 왔으니 하루 더 머물다 가자'가 되어야 한다"며 "철도는 사람을 데려올 뿐, 머물게 하는 것은 도시의 정책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화천이 철도 개통이라는 국가적 호재를 지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이제 그 답은 지역사회 전체의 준비와 실행에 달려 있다.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