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페인 부뇰을 넘어...‘화천 토마티발’, 대한민국 여름축제의 새 기준
해마다 8월 마지막 수요일이 되면 스페인 발렌시아주의 작은 마을 부뇰(Buñol)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마토 던지기 축제, ‘라 토마티나(La Tomatina)’의 풍경이다. 인구 1만 명 남짓한 시골 마을에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만 명의 관광객이 토마토를 던지고 구르며 분출하는 그 붉은 에너지는 오랫동안 ‘지구촌 여름 축제’의 대명사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 붉은 열정의 중심축이 평화의 땅, 강원도 화천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즐기는 스페인 이상의 붉은 열정”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선언과 함께 새롭게 도약하는 ‘화천 토마티발(Hwacheon Tomatival)’이 그 주인공이다.
정형화된 지역 축제를 깨뜨리는 파격, ‘토마티발’
그동안 전국 지자체의 농특산물 축제는 대개 비슷한 문법을 따라왔다. 지역 특산물을 홍보하고, 판매 부스를 늘리고, 유명 가수를 불러 모으는 전형적인 일회성 행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화천 토마토축제’가 ‘화천 토마티발’이라는 감각적이고 다이내믹한 이름으로의 체질 개선을 시도하는 것은 단순한 네이밍의 변화를 넘어선다. 토마토(Tomato)와 페스티벌(Festival)의 유기적 결합을 뜻하는 ‘토마티발’은 축제의 주체가 ‘판매자’에서 ‘즐기는 사람’으로, 공간의 성격이 ‘일시적 장터’에서 ‘문화적 이상향’으로 바뀌었음을 선언하는 언어적 이정표다.
특히 “화끈하게 터져라!”라는 서브 구호는 축제가 가져야 할 본연의 미학인 ‘카타르시스’를 정확히 짚어낸다. 붉은 토마토 반죽 속을 구르고, 황금반지를 찾기 위해 몰입하며, 쏟아지는 물줄기와 힙합·워터밤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순간, 현대인이 짊어진 일상의 무게와 스트레스는 붉은 파도 속으로 흔적도 없이 녹아내린다.
사내체육공원의 넓어진 스펙트럼과 열흘간의 대서사시
올해 화천의 여름 축제가 보여준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축제 공간의 확장과 기간의 연장이다. 기존 문화마을의 한계를 넘어 사내체육공원으로 행사장을 넓히고, 예년의 사흘 남짓하던 기간을 열흘이라는 긴 호흡으로 늘린 결정은 축제의 체질을 ‘지나가는 이벤트’에서 ‘머무르는 체류형 문화’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사내천변의 쾌적한 자연과 어우러진 넓은 공간은 관광객들에게 여유와 안전을 제공함과 동시에, 전통 풍물패의 신명 나는 장단부터 청년들의 삼바 타악 퍼레이드, 주민 난타 공연, 그리고 세대를 아우르는 트로트와 워터밤까지 다채로운 문화적 스펙트럼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여기에 지역 청년농업인(4-H)들과 화천힐링센터가 머리를 맞대 개발한 ‘토마토 아이스크림’처럼, 지역 특산물의 청량한 변신은 농가 소득 창출이라는 실용적 가치와 축제 먹거리의 미학적 완성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는 농업과 관광, 그리고 민·관·군이 함께 호흡하는 보기 드문 공동체 축제 모델의 모범을 보여준다.
스페인의 부뇰을 넘어, 세계 속의 ‘화천’으로
스페인의 ‘라 토마티나’가 수십 년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토마토를 던진다’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유희적인 행위를 통해 국적과 언어를 초월한 유대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화천의 ‘토마티발’ 역시 마찬가지다. 청정 화천의 산자락에서 자란 싱싱한 토마토는 이제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다. 유쾌한 대중문화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매개체이자, 여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열정의 도구다. 스페인 부뇰이 주는 이국적인 흥분을 안방에서, 그것도 훨씬 청결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화천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경쟁력이다.
“화천이 붉게 익으면, 여름은 비로소 절정에 달한다.”
‘화천 토마티발’은 이제 단순한 지역 축제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붉은 토마토 바다 속에서 터져 나오는 관람객들의 함성은, 화천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이 찾아오는 글로벌 여름 축제의 거점으로 당당히 서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청구서다. 이 뜨거운 8월, 화천 사내천변에서 터져 오를 붉은 열정의 대장정에 기꺼이 몸을 던져볼 일이다.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