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시대, 변하지 않는 책임
― 대한민국은 왜 재향군인회를 필요로 하는가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함께하는 뜻깊은 자리를 앞두고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연 재향군인회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결국 제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눈부신 변화를 이루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어냈으며,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고, 저출생과 초고령사회라는 구조적 변화는 우리에게 또 다른 시대적 과제를 던지고 있다.
안보의 개념 역시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국경을 지키는 일이 안보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사이버 공간을 지키고, 재난과 각종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며, 공동체의 신뢰를 지켜내는 일까지 중요한 안보의 영역이 되었다.
이처럼 시대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재향군인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재향군인회는 6·25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52년, 나라를 지키겠다는 뜻을 이어가기 위해 예비역들이 스스로 만든 조직이다.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과 함께 안보와 보훈, 지역사회 봉사에 참여하며 국가와 사회를 잇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나는 변해야 할 것과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변해야 하는 것은 시대에 맞는 실천의 방식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재향군인회의 창설 정신인 친목·애국·명예다.
친목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힘이다. 그것은 회원 간의 우의를 넘어 지역사회를 품는 따뜻한 연대로 이어진다. 애국은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며, 명예는 그러한 삶을 끝까지 지켜온 사람들에게 국민이 보내는 존경이다.
이 가치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달라질 수 없다. 다만 그 가치를 실천하는 방법은 시대와 함께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총을 들고 나라를 지켰다면, 오늘날에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국가유공자를 예우하며, 재난 현장에서 이웃과 함께하고, 다음 세대에게 자유와 책임의 가치를 전하는 일이 곧 이 시대의 애국이다.
재향군인회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만 찾게 되는 조직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지역사회를 향해 기꺼이 따뜻한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삶의 공동체여야 한다.
그 가치는 거창한 구호보다 묵묵한 실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누군가는 재향군인회를 지나간 '과거의 조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재향군인회는 과거에 머무는 조직이 아니라, 선배 세대의 경험과 희생을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주는 현재진행형의 공동체다.
돌아보면 나 역시 자연스럽게 국가안보와 더불어 살아왔다.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이신 아버지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랐고, 접경지역에서 40여 년 동안 언론인으로 살아가며 군과 지역사회의 희로애락을 기록해 왔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두 아들까지 3대가 재향군인회 회원이 된 것 역시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라를 위해 한 번 헌신한 사람은 제복을 벗은 뒤에도 공동체를 향한 책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삶의 내력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재향군인회 회원으로서, 오늘을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던져본 진솔한 물음이자 고백이다.
앞으로 재향군인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시대는 변해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제복은 벗을 수 있어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벗을 수는 없다.
나는 그 마음이 지난 세월 대한민국을 지탱해 왔듯,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지켜갈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재향군인회는 그 숭고한 마음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공동체로 오래 남기를 바란다.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