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상품권으로?”… 공직사회가 연 ‘화천사랑상품권 경제 생태계’
화천군청 공무원노동조합, 자발적 구매 확대 캠페인 전개
농어촌 기본소득·축제·관광·파크골프·햇빛연금까지 지역화폐로 연결
급여 직접 지급은 법적으로 어려워… 강제가 아닌 자발성과 제도 설계가 관건
발행 확대 넘어 소상공인의 지역 내 재소비까지 이어지는 ‘2차 순환’ 만들어야
화천군청 공무원들이 지역 상권에 힘을 보태기 위해 화천사랑상품권 구매 확대에 나섰다.
화천군청 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전종현)은 지난 7월 16일 군청 각 실·과·소를 찾아 직원들에게 화천사랑상품권의 자발적 구매와 적극적인 이용을 독려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이미 상당수 직원이 매달 급여를 받은 뒤 일정 금액을 화천사랑상품권으로 구매해 사용하고 있지만, 지역경제가 어려운 시기인 만큼 공직사회가 소비 확대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보태자는 취지다.
이번 캠페인은 단순히 상품권 판매량을 늘리자는 운동에 머물지 않는다. 공직자가 지역 식당과 카페, 전통시장, 주유소, 편의점 등을 먼저 이용해 소비가 화천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줄이고, 소상공인의 매출을 실질적으로 늘리자는 지역 상생운동에 가깝다.
접경지역인 화천은 상주 인구가 많지 않은 데다 국방개혁과 군부대 구조 변화로 군장병 유동 인구와 소비가 줄면서 지역 상권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왔다. 이런 현실에서 약 600명에 이르는 군청 공직자들의 일상적인 소비는 골목상권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공직자 600명이 매월 10만원씩 지역상품권을 추가로 구매하면 한 달 6,000만원, 연간 7억2,000만원의 소비가 지역 안에서 이뤄진다. 1인당 구매액이 월 20만원이면 연간 규모는 14억4,000만원으로 늘어난다.
개인에게는 크지 않은 금액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꾸준히 참여한다면 지역 상권에는 무시할 수 없는 소비 기반이 된다. 공무원노동조합이 이번 캠페인을 자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무원 월급을 상품권으로 줄 수 있을까
캠페인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에서는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도 나왔다.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취지가 좋다면 공무원 월급의 일부를 아예 화천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면 되지 않을까.”
지역 소비를 늘리자는 취지만 놓고 보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행정기관이 공무원 봉급의 일부를 일괄적으로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것은 현행 법체계상 어렵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임금을 통화로 근로자에게 직접 전액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공무원 보수 역시 관련 법령에 따라 지급되는 법정 보수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봉급 일부를 상품권으로 바꿔 지급하는 방식은 법적 근거와 공무원의 권리, 보수 지급 원칙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고 해당 지역의 등록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지급수단이다. 지류와 카드, 모바일 형태로 운영되지만 국가가 발행한 법정 통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결국 해답은 ‘월급을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봉급을 정상적으로 지급받은 공무원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상품권을 구매해 사용하는 데 있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중요하다.
행정이 급여 일부를 상품권으로 바꿔 지급하면 사실상 강제성이 생길 수 있지만, 공무원이 급여를 받은 뒤 자발적으로 상품권을 구매하면 개인의 소비 선택이 된다. 화천군청 공무원노동조합의 캠페인이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자발성 때문이다.
강제보다 오래가는 것은 자발적 참여
지역화폐 정책은 참여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참여가 강제됐다는 인식이 생기면 오히려 반감이 커지고 지속성도 떨어질 수 있다.
공직사회가 지역경제를 위해 먼저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개인별 경제 사정과 소비 선택은 존중돼야 한다. 일정한 구매액을 사실상 의무화하거나 부서별 실적을 비교하는 방식은 캠페인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
따라서 화천군과 노동조합은 ‘얼마나 많이 샀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꾸준히 사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매월 일정액 자동 구매를 희망하는 직원에게 편리한 신청 절차를 제공하되, 언제든 금액을 변경하거나 참여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직원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맹점과 이용 방법을 충분히 안내하는 것도 필요하다.
맞춤형 복지제도나 각종 포상제도와 지역화폐를 연계하는 방안도 관련 법령과 운영 지침, 당사자의 선택권을 면밀히 검토한 뒤 추진해야 한다. 특히 봉급·수당·상여금 등 법정 보수를 행정기관이 직접 상품권으로 대체하는 것과, 보수를 지급받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선의의 정책일수록 절차가 정당해야 오래갈 수 있다.
공무원 캠페인은 ‘화천사랑상품권 생태계’의 시작
이번 캠페인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화천군의 지역화폐 정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민선 9기 화천군이 그리고 있는 구상은 단순히 상품권 발행액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직사회의 자발적 소비를 시작으로 농어촌 기본소득과 지역축제, 관광시설, 파크골프장, 각종 정책수당, 장기적으로 추진될 화천형 햇빛연금까지 하나의 지역화폐 체계로 연결하는 것이다.
주민에게 지급된 소득이 화천사랑상품권으로 지역 가맹점에서 사용되고, 늘어난 매출이 소상공인의 소득과 고용, 지역 내 구매로 다시 이어지는 구조다.
이를 ‘화천사랑상품권 경제 생태계’라고 부를 수 있다.
상품권을 많이 발행하는 것만으로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민이 편리하게 사용하고, 가맹점이 부담 없이 받아들이며, 상품권으로 발생한 매출이 다시 화천 안의 거래와 소비로 이어져야 한다.
발행과 지급, 소비, 매출, 재소비가 하나의 순환 고리를 이룰 때 비로소 지역화폐는 지역경제의 기반으로 기능한다.
농어촌 기본소득, 화천 지역화폐의 최대 전환점
화천사랑상품권 유통량을 가장 크게 바꿀 요인은 농어촌 기본소득이다.
화천군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따라 주민 1인당 매월 15만원을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할 예정이다. 지급이 본격화하면 그동안 행사와 할인 판매를 중심으로 유통되던 화천사랑상품권이 매달 주민 생활 속으로 정기적으로 들어오게 된다.
6월 말 화천군 인구 2만2,500여 명을 단순 적용하면 월 지급 규모는 약 33억7,500만원에 이른다. 이를 30일로 환산하면 하루 평균 약 1억1,000만원 규모다.
다만 실제 총액은 지급 기준일과 거주 요건, 최종 대상자 확정 결과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매달 수십억원의 지역화폐가 5개 읍·면 상권에 지속적으로 유통된다는 사실은 화천 경제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큰 변화다.
과거에는 축제철이나 관광 성수기에 소비가 집중됐다면, 기본소득 시행 이후에는 연중 일정한 소비가 지역 상권에 공급될 가능성이 커진다.
음식점과 식료품점, 카페, 미용실, 주유소, 농자재 판매점, 전통시장 등 생활밀착형 업종은 가장 먼저 변화를 체감할 것으로 보인다. 주민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면 그동안 미뤘던 생활 소비가 살아날 수 있고, 소상공인은 안정적인 매출을 바탕으로 고용과 서비스 개선에 나설 여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지역화폐로 지급된다는 사실만으로 지역경제 효과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이 부족하거나 특정 업종에 소비가 지나치게 몰리면 주민 불편과 업종 간 격차가 커질 수 있다. 상품권을 받은 상인이 곧바로 환전해 지역 밖의 거래처에서 물품을 구매한다면 돈은 한 차례 소비된 뒤 다시 외부로 빠져나간다.
농어촌 기본소득의 성공 여부는 지급액뿐 아니라 그 돈이 화천 안에서 얼마나 폭넓고 오래 순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축제와 관광, 파크골프장을 지역 소비의 입구로
화천군은 지역축제와 관광지, 파크골프장 등 문화·체육시설의 이용요금을 운영 여건에 맞게 현실화하고, 유료 이용객에게 돌려주는 화천사랑상품권 금액도 함께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요금은 시설과 서비스 수준, 운영비에 맞게 받되 이용객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지역상품권을 돌려줘 화천 시내의 음식점과 카페, 전통시장, 농·특산물 판매장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한 입장료 인상과는 다르다.
관광객이 낸 이용료 일부를 상품권으로 돌려주면 실질적인 부담을 낮출 수 있고, 반환된 상품권은 지역 상권에서 추가 소비를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시설 이용료를 낸 관광객에게 일정 금액의 상품권을 돌려주면, 관광객은 시설만 이용하고 곧바로 화천을 떠나는 대신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농·특산물을 구매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 곳에서 끝날 소비를 지역의 여러 업종으로 확산하는 셈이다.
다만 입장료와 상품권 반환액을 결정할 때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용요금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방문객 감소로 이어질 수 있고, 반환액이 너무 적으면 소비 유도 효과가 떨어진다. 반대로 반환액을 과도하게 높이면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시설별 이용객의 특성과 체류시간, 주변 가맹점 분포, 평균 소비액 등을 분석해 가장 효과적인 비율을 찾아야 한다.
파크골프장 역시 이용객 수를 늘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경제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외지 이용객이 경기만 마치고 돌아가는 구조에서는 지역에 남는 소득이 제한적이다.
이용료 일부를 화천사랑상품권으로 돌려주고 지역 음식점과 숙박업소, 농·특산물 판매장 정보를 함께 제공한다면 파크골프 관광을 체류형 소비로 전환할 수 있다.
산천어축제와 토마토축제, 소비 효과를 연중 경제로
화천산천어축제는 화천사랑상품권을 전국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사례다. 화천토마토축제 역시 농산물 판매와 음식점 이용, 체험 소비를 지역화폐와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무대다.
축제장 입장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지급된 상품권이 농산물 판매장과 지역 상가에서 사용되면 축제의 경제효과는 행사장 안에 머물지 않고 읍내와 면 지역 상권으로 확산된다.
앞으로는 단순히 축제 기간 상품권 사용액을 집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어느 업종에서 얼마나 사용됐는지, 축제장 주변과 외곽 상권의 차이는 어떠한지, 외지 관광객이 상품권 금액보다 얼마를 더 소비했는지 등을 분석해야 한다.
상품권 1만원을 받은 관광객이 실제로 1만5,000원이나 2만원을 소비한다면 상품권은 추가 소비를 일으키는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이다. 반면 상품권 액면가만 사용하고 떠나는 비율이 높다면 가맹점 안내나 체류 프로그램을 보완해야 한다.
축제의 성공을 방문객 수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지역에 남긴 실질 소비와 재방문, 상권 확산 효과로 판단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햇빛연금까지 더해지면 연중 소득 순환 구조
화천군이 추진하는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과 ‘화천형 햇빛연금’도 장기적으로 화천사랑상품권 생태계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을 주민에게 배분하고 그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한다면, 에너지 생산에서 나온 소득이 다시 지역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이 공공재정에 기반한 정기 소득이라면 햇빛연금은 지역의 자연자원과 주민참여형 발전사업에서 만들어지는 수익이다. 두 제도가 지역화폐와 연결되면 화천은 복지 지원과 주민소득, 에너지 수익, 지역 소비를 하나의 순환 구조 안에 담을 수 있다.
다만 햇빛연금의 지급 방식과 대상, 현금과 상품권의 비율은 사업 수익성과 주민 선택권, 법적 근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해야 한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구상을 이미 결정된 정책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햇빛연금이 단순한 현금 배분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공동자산에서 얻은 수익을 주민의 삶과 지역경제에 다시 투자하는 구조로 설계되는 일이다.
1996년 시작한 화천사랑상품권, 이제 두 번째 도약
화천사랑상품권은 1996년부터 유통되기 시작해 국내 지역화폐의 초기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
2006년에는 화천산천어축제에 도입돼 축제 소비를 지역 상권으로 연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후 음식점과 카페, 전통시장, 편의점, 주유소 등 생활밀착형 가맹점에서 사용되며 군민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화천사랑상품권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 범위가 화천지역 가맹점으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현금을 지급하면 온라인 쇼핑이나 외지 대형 매장, 다른 도시의 병원과 식당 등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지역상품권은 원칙적으로 발행 지역의 가맹점에서 소비된다. 지역 자금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속도를 늦추고, 지역 소상공인에게 소비가 우선 돌아가도록 하는 장치다.
화천사랑상품권은 이제 역사성과 인지도를 넘어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다.
기존에는 할인 판매와 축제 연계가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기본소득과 관광, 체육시설, 공직사회 소비, 주민참여형 에너지 수익까지 연결되는 종합적인 지역경제 플랫폼으로 역할이 확대될 수 있다.
발행량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상품권 유통액이 늘면 소상공인 매출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발행 규모만 커진다고 지역경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지역 상권의 공급 능력이다.
매월 수십억원의 구매력이 새롭게 생기는데 지역 상권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소비는 일부 업종과 가맹점에 집중될 수 있다. 주민이 원하는 물품을 지역에서 구하지 못하면 상품권 사용 자체를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읍·면별 가맹점 격차도 점검해야 한다.
화천읍과 사내면처럼 상권이 상대적으로 큰 지역에 사용액이 집중되고, 상서·간동·하남면의 작은 상권은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상품권이 화천 전체에서 사용된다고 해도 실제 혜택이 특정 지역에만 몰린다면 균형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라고 보기 어렵다.
업종별 편중도 문제다.
식당과 식료품점 등 일부 생활업종에는 매출이 크게 늘 수 있지만, 문화·교육·수리·생활서비스 등 다른 업종에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지역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업종과 가맹점을 지속해서 발굴하고, 주민 수요에 맞는 창업과 업종 전환도 지원해야 한다.
가격 인상 가능성 역시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지역에 일정한 구매력이 대규모로 공급될 때 일부 품목과 서비스 가격이 오르면 기본소득과 상품권의 실질적인 혜택이 줄어든다. 행정이 가격을 직접 통제할 수는 없지만, 주요 생필품과 외식 가격의 변화를 정기적으로 살피고 소비자와 상인단체가 함께 적정가격과 서비스 개선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1차 소비’를 ‘2차 순환’으로 바꿔야
화천사랑상품권 경제 생태계를 완성하려면 주민과 관광객이 상품권을 사용하는 1차 소비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상품권을 받은 음식점이 지역 농산물을 구매하고, 카페가 화천에서 생산된 식재료와 소모품을 이용하며, 소매점이 지역의 운송과 수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2차 순환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현행 지역사랑상품권은 소비자가 가맹점에서 사용한 뒤 가맹점이 이를 환전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상인이 환전받은 돈으로 외지 도매업체에서 물품을 구매하면 자금은 다시 화천 밖으로 빠져나간다.
자본 유출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과 원재료는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조달할 수 있는 품목과 서비스까지 외부에 의존하는 비율은 줄일 수 있다.
화천군은 지역 농축산물과 가공품, 인쇄, 운송, 청소, 수리, 건축자재, 생활서비스 등을 연결하는 ‘지역 내 거래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소상공인이 관내 업체와 거래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공동구매와 지역 조달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지역화폐의 진짜 성과는 발행액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몇 번 돌았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상품권 1만원이 한 번 사용되고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과, 주민에게서 음식점으로, 음식점에서 지역 농가로, 농가에서 지역 정비업체로 이어지는 것은 경제적 의미가 전혀 다르다.
안정적인 할인 재원 마련해야
화천사랑상품권 구매를 확대하려면 할인 혜택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문제는 정부 지원 규모와 지방재정 상황에 따라 할인율과 판매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할인율이 자주 바뀌거나 예산 소진으로 판매가 중단되면 주민의 신뢰와 이용 습관을 유지하기 어렵다.
화천군은 국비 지원 여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일정 수준의 할인 혜택을 유지할 수 있는 자체 재원과 중장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10% 상시 할인’을 무조건 조례로 고정하는 방식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기본소득이 정책발행으로 풀리는 상황에서 일반 구매 할인까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면 재정 부담이 크게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발행과 일반 할인판매를 구분하고 시기와 대상, 월별 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이다. 청년과 군장병, 취약계층, 전입자 등 정책 목표에 따라 혜택을 세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안정성은 필요하지만 경직성은 피해야 한다.
군부대와 교육·금융기관으로 넓혀야
화천군청 공무원노동조합의 캠페인은 출발점이다. 지역경제에 더 큰 변화를 만들려면 군부대와 교육기관, 경찰·소방, 농·축협과 금융기관, 지역 기업체 등으로 참여를 넓혀야 한다.
화천은 군부대가 지역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접경지역이다.
군 간부와 군무원, 장병이 지역상품권을 자발적으로 구매하고 외출·외박 때 지역 상권을 이용하도록 유도한다면 소비 확대 효과는 공직사회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다만 군인 급여나 각종 수당을 상품권으로 강제 지급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기관별 복지사업과 포상, 행사 운영비 등을 법령과 지침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지역 소비와 연결하고 개인에게는 충분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민·관·군 상생협약도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관별 자발적 구매 목표를 강요하기보다 지역 식당 이용의 날, 전통시장 장보기, 지역 농산물 공동구매, 행사 기념품의 지역제품 전환 등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공동사업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경제에 참여하는 방식은 상품권 구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업체 이용과 지역제품 구매, 회식과 행사 장소를 지역 안에서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상생이다.
카드·모바일 확대하되 지류 이용자도 보호해야
화천사랑상품권의 이용 편의성을 높이려면 카드형과 모바일형의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으로 충전하고 잔액과 사용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은 공무원과 청년, 군장병, 관광객에게 편리하다. 지류상품권보다 인쇄와 보관, 유통 관리 비용을 줄이고 부정 유통을 추적하기도 쉽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이 곧 지류상품권의 급격한 폐지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고령 주민과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통신 환경이 불편한 지역 주민에게 지류상품권은 여전히 필요한 결제수단이다. 모바일 중심으로 이용환경을 개선하되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지류와 선불카드를 함께 운영해야 한다.
가맹점의 부담도 줄여야 한다.
카드 단말기와 결제 오류, 환전 절차, 정산 시기 등에 불편이 없도록 상시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소규모 가맹점에는 교육과 현장 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지역화폐는 주민에게만 편리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받는 상인에게도 편리해야 한다.
부정 유통 막을 관리체계 필요
유통 규모가 커질수록 부정 유통의 위험도 커진다.
실제 물품이나 서비스 거래 없이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이른바 ‘깡’, 가맹점과 구매자의 담합, 허위 매출, 가족이나 지인을 통한 반복 결제 등이 발생하면 지역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기본소득과 각종 정책수당이 더해져 유통액이 크게 늘어나는 만큼 이상 거래를 조기에 찾아내는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같은 가맹점에서 반복 결제하거나 매출 규모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많은 상품권이 사용되는 경우를 점검하고, 부정 유통이 확인되면 가맹점 등록 취소와 환수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만 소상공인을 잠재적인 부정행위자로 보는 과도한 규제는 피해야 한다. 명확한 기준을 안내하고 사전 예방과 교육을 우선하되,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위반에는 책임을 묻는 균형이 필요하다.
소상공인도 서비스와 품질로 답해야
지역화폐 확대는 소상공인에게 기회이지만 동시에 책임도 따른다.
상품권 사용처가 제한돼 있다는 이유로 불친절하거나 가격과 품질 관리에 소홀하다면 주민은 지역화폐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지역경제를 위해 써 달라”는 요청만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오래 붙잡을 수는 없다.
상인은 친절과 품질, 합리적인 가격으로 답해야 하고, 행정은 교육과 컨설팅, 시설 개선, 온라인 홍보 등을 지원해야 한다.
화천군이 관광지와 체육시설의 이용료를 현실화하려는 것도 같은 원칙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맞는 요금을 받되, 이용객에게 지역상품권을 돌려줘 지역 소비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요금 인상만 있고 서비스 개선이 없다면 주민과 관광객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반대로 시설과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반환 혜택도 충분하다면 이용료 현실화는 지역경제를 키우는 투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성과를 발행액 아닌 ‘지역에 남은 돈’으로 평가해야
화천사랑상품권 정책의 성과지표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발행액과 판매액, 사용액이 주요 성과로 제시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수치만으로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얼마가 발행됐는지보다 상품권이 어느 읍·면과 업종에서 사용됐는지, 소상공인 매출이 실제로 얼마나 늘었는지, 상품권이 없었어도 이뤄졌을 소비와 새롭게 추가된 소비를 어떻게 구분할지 살펴야 한다.
관광객이 반환받은 상품권보다 얼마를 더 지출했는지, 지역 내 조달과 재소비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소비 증가가 임대료나 물가 상승으로 상쇄되지 않았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 시행 전후의 매출과 창업·폐업, 고용, 읍·면별 소비 흐름을 비교하는 데이터 기반 평가체계를 갖춘다면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보완할 수 있다.
개인별 소비내역은 철저히 보호하되, 익명화된 통계를 활용해 주민에게 정책 효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지역화폐는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데이터로 지속돼야 한다.
공직사회가 놓은 첫돌, 민·관·군이 함께 이어야
화천군청 공무원노동조합의 화천사랑상품권 구매 확대 캠페인은 규모보다 상징성이 크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주민과 소상공인에게만 요구하지 않고, 안정적인 소득을 받는 공직사회가 먼저 소비에 참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공무원 월급을 상품권으로 직접 지급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현행 법체계는 사실상 부정적인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것이 지역경제를 위해 공직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봉급은 정당하게 지급하되, 그 이후의 소비를 자발적으로 지역과 나누는 길은 열려 있다.
강제가 아닌 참여, 실적 경쟁이 아닌 공감, 일회성 행사가 아닌 생활 속 소비가 이번 캠페인의 중심이 돼야 한다.
여기에 농어촌 기본소득과 축제·관광시설의 상품권 반환, 파크골프 관광, 군부대와 유관기관의 지역 소비, 장기적으로 햇빛연금까지 연결된다면 화천사랑상품권은 단순한 할인 수단을 넘어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공동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
김세훈 화천군수는 “지역화폐로 군민 소득이 늘고, 늘어난 소득이 활발한 소비로 이어지며, 소비 증가가 다시 소상공인의 소득 향상으로 연결되는 순환 고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 순환 고리를 완성하려면 행정의 발행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직자는 자발적인 소비로, 주민은 지역 상권 이용으로, 소상공인은 친절과 품질로, 군부대와 기관·기업은 지역 조달과 참여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품권이 한 번 쓰이고 사라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소상공인의 매출이 다시 지역 농가와 업체, 일자리와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화천사랑상품권은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지역화폐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유통량 확대를 넘어 유통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다.
얼마를 발행했는가보다 그 돈이 화천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받았는가보다 그 소득이 지역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가.
공직사회가 시작한 작은 캠페인이 농어촌 기본소득과 관광, 축제, 주민소득 정책을 하나로 잇는다면 화천은 지방소멸과 자본 유출에 맞서는 새로운 지역경제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화천사랑상품권 경제 생태계’의 성패는 상품권 자체에 달려 있지 않다.
그 안에서 행정과 주민, 상인, 군부대와 기관이 얼마나 신뢰하며 함께 순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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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청 공무원노동조합 전종현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지난 7월 16일 군청 각 실·과·소를 방문해 직원들에게 화천사랑상품권의 자발적 구매와 이용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