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행정은 현장의 동반자여야 한다
― "당신들이 무얼 안다고"… 협치를 가로막는 권한의 오만
지방자치는 행정이 지역을 이끄는 제도가 아니다. 행정과 현장, 공공과 민간이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함께 지역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협치의 제도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새로운 지방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소통과 협력, 공정과 혁신을 약속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취임식의 조명이 꺼지고 일상이 시작되면, 최일선 현장에서는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오래된 관행이 되풀이된다. 권한을 봉사가 아닌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부 공직사회의 왜곡된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행정은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일부 권한을 가진 담당 공직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원자가 아니라 관리자로, 협력자가 아니라 감독자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이들은 누구보다 제도를 잘 안다. 어느 기관이 어떤 예산으로 운영되는지, 어떤 규정을 적용받는지, 어떤 부분이 행정적으로 취약한지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전문성이 현장을 살리는 데 쓰이지 않고, 현장을 통제하는 데 사용될 때 시작된다.
현장의 어려움과 제도의 한계를 설명하면 돌아오는 말은 차갑다.
"당신들이 무얼 안다고."
"주는 돈이나 잘 쓰면 되지."
이 말은 단순한 한마디가 아니다.
현장의 경험과 전문성을 부정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권력의 언어다.
그다음에는 과도한 자료 요구와 형식 중심의 점검, 실적 위주의 평가가 이어진다. 규정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준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상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행정은 규정을 집행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규정 뒤에 숨어 사람을 굴복시키는 조직이어서는 안 된다. 규정은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현장을 침묵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은 본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를 길들이는 기술로 사용되는 순간 전문성은 더 이상 전문성이 아니라 권력이 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문화가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결합할 때다.
학연과 지연, 전직 근무 인연 등으로 얽힌 좁은 지역사회에서는 행정과 민간의 건강한 협력보다 사적인 영향력이 작동하는 경우가 생긴다. 인허가권과 보조금 집행 권한을 가진 일부 담당자는 유관기관과 민간단체를 동등한 협력 파트너가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때로는 노골적인 말보다 암묵적인 분위기가 더 큰 압박이 된다.
"여기서 계속 일하려면 잘 판단하라."
이 한마디만으로도 현장은 충분히 위축된다.
행정 권한은 주민이 위임한 공적 권한이다. 그것은 누군가를 길들이기 위한 힘이 아니라 공공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책임이다.
특히 보조금은 더욱 그렇다.
보조금은 행정의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재원이다.
행정은 그 재원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관리할 책임을 맡았을 뿐이다. 그 책임이 언제부터인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라는 수직적 관계로 왜곡되는 순간, 협치는 무너지고 행정은 지배의 얼굴을 갖게 된다.
그 피해는 결국 지역사회 전체로 이어진다.
현장은 새로운 시도보다 눈치를 먼저 보게 되고, 창의적인 사업보다 무난한 사업을 선택하게 된다. 감사에 걸리지 않는 것이 혁신보다 중요해지는 순간, 행정은 안전해질지 몰라도 지역은 성장하지 못한다.
지방자치는 행정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행정과 의회, 공공기관, 사회복지시설, 교육기관, 문화예술단체, 체육단체, 사회단체, 그리고 수많은 민간조직이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의 시스템이다.
따라서 행정은 현장을 평가하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하고, 통제하기 전에 먼저 지원해야 한다.
새롭게 출범한 지방정부와 공직사회는 지금이 조직문화를 바로 세울 기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조금 심사와 기관 평가는 특정 담당자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되지 않도록 더욱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이의 제기와 재검토 절차도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부당한 압박이나 권한 남용을 경험한 현장이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독립적인 고충 처리와 옴부즈만 기능도 실효성 있게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공직사회의 인식이다.
공직의 전문성은 군림하기 위한 자격이 아니라 봉사하기 위한 책임이다.
권한이 클수록 말은 더욱 신중해야 하고, 경험이 많을수록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
행정은 권한으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공정함으로 신뢰받는다.
권한은 조직이 주는 것이지만, 권위는 현장이 인정할 때 비로소 생긴다.
행정은 현장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장은 행정이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역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동반자다.
현장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행정은 결국 지역의 가능성을 억누르는 행정이다. 협력을 잃은 행정은 성과를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신뢰를 만들 수는 없다.
새로운 지방정부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사업을 추진했는가에 있지 않다.
현장을 얼마나 존중했는가, 얼마나 함께 걸어갔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 모든 공직자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권한으로 현장을 움직이려 하는가, 아니면 신뢰로 현장과 함께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화려한 성과를 내세워도 그것은 좋은 행정이라 말하기 어렵다.
행정의 품격은 권한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현장을 얼마나 존중하는가에 달려 있다.
행정은 현장을 관리하는 조직이 아니라 함께 지역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동반자다.
현장을 두려움으로 침묵시키는 곳에는 협치가 없고, 존중으로 함께하는 곳에서만 건강한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새로운 시대의 행정은 군림이 아니라 협력이어야 한다.
현장을 존중하는 행정이 결국 지역을 살린다.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