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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년을 걸어온 약속 최양업 신부 시복과 김세훈 군수가 준비한 화천의 미래

유흥식 추기경 "내년 봄 시복 기대"... 화천 만산동 교우촌 다시 주목

기사입력 2026-07-1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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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신문 대표기획】

170년을 걸어온 약속

최양업 신부 시복과 김세훈 군수가 준비한 화천의 미래

 
  • 유흥식 추기경 "내년 봄 시복 기대"... 화천 만산동 교우촌 다시 주목

  • 지난 3월 교황청 기적 심사 통과,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와 맞물려 글로벌 명소 도약 기회


 




① 프롤로그: 170년 전의 발걸음, 오늘의 화천을 깨우다

 

1857년 가을. 한 사제가 깊은 산길을 걷고 있었다.

사람의 왕래조차 드물었던 강원 북부의 산골이었다. 첩첩산중을 넘고 거친 계곡을 건너야만 겨우 닿을 수 있는 길. 지금도 오지로 불리는 화천 만산동이지만, 170여 년 전 그곳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땅이나 다름없었다.

그 길 끝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작은 공동체가 있었다. 사제는 오직 그들을 만나기 위해 험로를 자처했다. 편안한 길을 택하지도, 안전한 곳에 머물지도 않았다. 신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것, 그것이 그의 유일한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 훗날 사람들은 그를 '땀의 순교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170년이 흐른 지금, 그의 이름이 다시 화천을 깨우고 있다.

 

기적 심사를 통과한 '땀의 순교자', "9부 능선을 넘었다"

 

지난 18일 서울 명동대성당.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은 국내 신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슴 벅찬 소식을 전했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諡福)은 이제 9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올해 안에 남은 절차가 마무리된다면, 내년 이른 봄에는 시복식을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날 유 추기경이 밝힌 비화는 감동적이었다. 지난 2021년, 최 신부의 시복을 위한 첫 번째 기적 심사에서 탈락했을 때 유 추기경은 고(故)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당시 유 추기경은 "최 신부님은 밤낮없이 7천 리를 걷다 길가에서 선종하신 착한 목자의 모범"이라며 호소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께서 더 좋은 기회를 주실 것"이라며 위로했다.

그 기도와 염원이 통했을까. 마침내 지난 3월, 교황청은 공식적으로 최 신부의 전구(다른 이를 위해 기도해 줌)를 통한 기적적 치유 사례를 인정하며 기적 심사를 통과시켰다. 이제 남은 신학위원회와 추기경단 회의만 거치면 교황의 최종 승인으로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선포된다.

특히 이 시복식은 2027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가톨릭계의 올림픽, '세계청년대회(WYD)'와 맞물려 있다. 유 추기경은 "내년 봄 시복식이 세계청년대회의 영적 에너지를 한 단계 높이는 은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음과 시선이 최 신부의 발자취로 쏠릴 것임을 예고한다. 그리고 그 발자취의 중심에 바로 화천 만산동이 있다.
 

'조선의 알프스' 화천 만산동이 가진 무게

 

최양업 신부는 전국을 누볐다.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를 종횡무진하며 127개의 교우촌을 찾아다녔다. 1년에 7천 리, 오늘날 거리로 환산하면 약 2,800km에 달하는 고행길이었다. 그가 남긴 발걸음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가장 길고 위대한 순례였다.

그 수많은 발자취 가운데서도 화천 만산동은 지극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최 신부는 자신이 쓴 서한에서 화천 만산동의 험준한 산세를 바라보며 '조선의 알프스'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남겼다. 길이 없고 교통이 전무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그 험난한 오지까지 최 신부가 발걸음을 재촉했던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 신앙을 지키며 숨죽여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기록은 단순한 종교적 문헌을 넘어, 조선 후기 민초들의 생존과 인간 승리를 증명하는 귀중한 역사적 사료이자 화천이 간직한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이다. 화천은 최 신부가 그저 '잠시 스쳐 간 곳'이 아니다. 그의 사목 정신과 헌신이 지금도 토양 속에 살아 숨 쉬는 역사적 현장이다.



 


② 이야기가 미래를 만든다: 김세훈 군수가 던진 선제적 질문

 

유흥식 추기경의 발언이 전해진 뒤, 화천에서는 자연스럽게 한 편의 글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25년 11월 화천신문에 연재

http://www.inewspeople.com/front/news/view.do?articleId=ARTICLE_00022967&pageIndex=3

되었던 김세훈 군수의 특별기고 「드림 소사이어티와 화천의 관광 자원」이다.

당시만 해도 많은 독자는 이를 흔한 정책 제안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면, 그 글은 단순한 관광론이 아니었다. 화천의 미래 성장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문제 제기였다.
 

"관광은 시설이 아니라 이야기다"

 

김 군수는 특별기고를 통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왜 어떤 곳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고, 어떤 곳은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외면받는가. 그는 그 답을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개념에서 찾았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산업사회와 정보사회를 지나, 미래에는 '이야기와 감성'이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물질이나 기능만 소비하지 않는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소비하고, 감동을 구매하며, 경험을 간직한다. 단출한 성벽 길도 영화 속 주인공들의 서사가 입혀지면 순식간에 세계적 명소로 거듭나는 것이 드림 소사이어티의 힘이다.

김 군수는 이러한 시대적 격변 속에서 화천이 무엇을 무기로 삼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 "화천에도 세계 시장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위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 핵심이 바로 최양업 신부와 만산동 교우촌이었다.
 

산천어축제 성공을 함께 이끌었던 행정가의 '성공 이후'의 고민


김세훈 군수는 기고문에서 자신의 과거 경험을 가감 없이 공유했다. 20여 년 전 정책기획단장과 관광정책과장을 지내며 오늘날 세계적인 겨울축제로 우뚝 선 '산천어축제'의 기틀을 닦았던 시간이다.

산천어축제의 성공 신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지만, 그의 시선은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기후변화로 인해 얼음이 얼지 않는 겨울이 올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그리고 전국적으로 쏟아지는 모방 축제들과의 경쟁을 냉정하게 지적했다. 성공의 정점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고민의 끝에서 포착한 돌파구가 바로 '이야기(Story)'였다. 산천어축제가 화천의 겨울을 책임진다면, 화천에는 봄·여름·가을 사계절 내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 수 있는 깊이 있는 서사가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최양업 신부의 발자취라는 진단이다.
 

170년의 시간을 건너 시의적절한 만남


최양업 신부가 만산동을 찾았던 1857년 이후, 그의 발자취는 오랜 세월 교회사 속 깊은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표지석이 세워지고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그 가치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김 군수가 이를 화천의 미래 문화관광 자산으로 선언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교황청의 공식 시복 임박 소식이 날아들었다. 시복 절차가 본격화되는 시점과 김 군수의 제안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시간선 위에서 만나게 됐다. 170년 전 사제가 남긴 헌신의 발걸음과, 이를 지역의 미래 전략으로 엮어내려 한 화천의 안목이 하나의 시간선 위에서 만난 셈이다. 역사는 결국 철저히 준비하는 자의 몫이 된다.

 

③ '최양업 순례길'은 단순한 관광사업이 아니다

 

모든 지역이 저마다의 경쟁력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인다. 어떤 이는 산과 바다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거대한 인프라와 특산물을 내세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를수록 지역의 진정한 경쟁력은 외형이 아닌 '그 지역만의 유일무이한 이야기'에서 결정된다.

풍경을 보기 위해 떠나는 관광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 풍경 속에 스며있는 의미와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김세훈 군수가 제안한 화천성당에서 출발해 용신교와 파포천, 구운천을 거쳐 만산동 교우촌까지 이르는 약 20㎞ 구간, 이른바 '최양업 순례길' 조성을 획일적인 토목·관광 사업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터널 개통과 '빨대 효과'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

 

김 군수는 특별기고에서 매우 날카로운 행정적 통찰을 남겼다. 현재 오음리와 원천리 방향의 터널이 뚫리면서 화천으로 오는 물리적 길은 넓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기뻐하지만, 교통망의 확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지역만의 독특한 콘텐츠가 없다면, 방문객들이 머물지 않고 더 쉽게 빠져나가는 '빨대 효과(Straw Effec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점(點)'의 관광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사색하며 걷고 머무는 '선(線)'과 '면(面)'의 관광, 즉 순례길의 개발이 시급하다.

김 군수는 이미 지난해 "최양업 신부는 언젠가 반드시 성인품에 오를 것이다. 그때 가서야 만산동을 재조명하자고 법석을 떠는 것은 한발 늦은 일"이라고 선제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유 추기경의 발언으로 시복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 경고는 화천 행정이 당장 실천해야 할 당면 과제가 되었다.
 

시설이 아닌 '콘텐츠'가 먼저다


그렇다면 지금 화천이 해야 할 '준비'란 무엇인가. 그것은 거창하고 화려한 시설을 짓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인들의 감성은 소박함 속의 진정성에 더 크게 반응한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만산동 교우촌 역사의 체계적 정리, 방문객들이 표지석만 보고 돌아가지 않도록 깊은 울림을 주는 스토리텔링 기반 해설 시스템 구축, 그리고 화천의 주민과 학생들이 고장의 역사적 가치를 자부심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문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담한 경당, 걷기 좋은 길,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스토리 영상 하나면 충분하다. 콘텐츠가 뼈대를 이룰 때 인프라도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산천어축제와 순례길, 화천 관광의 '이모작'


일각에서는 산천어축제라는 막강한 브랜드가 있는데 굳이 새로운 자원이 필요하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두 자원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완벽한 상호보완적 상생 관계다.

산천어축제가 화천의 겨울을 폭발적으로 책임지는 다이내믹한 축제라면, 최양업 순례길은 사계절 내내 국내외 순례객과 도보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정적인 역사문화 콘텐츠다. 겨울에는 축제로 도시의 활력을 격상시키고, 봄·여름·가을에는 순례길로 깊이와 품격을 더하는 전략이다. 이는 화천 관광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지역 경제의 기초체력을 사시사철 단단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상생 모델이다.

 

④ 에필로그: 화천의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역사는 결코 게으른 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수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도 이를 '과거의 옛날이야기'로 박제해 두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선제적으로 가치를 발견해 미래의 경쟁력으로 부활시키는 지역이 있다. 170년간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온 만산동의 길 앞에서, 이제 화천은 선택을 해야 한다.

유흥식 추기경의 선언으로 최양업 신부에 대한 국민적·세계적 관심이 최고조에 달할 내년 봄, 그리고 전 세계 청년들이 한국을 찾을 2027년 세계청년대회 때 화천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할 것인가. 이미 이야기를 완벽히 준비한 고품격 문화 도시로 서 있을 것인가, 아니면 뒤늦게 붐을 쫓아 예산을 쏟아붓는 기회를 놓친 도시가 될 것인가는 오롯이 지금 우리의 행보에 달렸다.
 

화천신문의 시선: 행정과 주민이 함께 만드는 도시의 품격


지역의 미래는 결코 행정의 일방적인 드라이브나 거대한 개발 계획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김세훈 군수가 던진 "관광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화두는, 결국 우리 지역이 가진 정신적 자산을 주민들과 함께 어떻게 공유하고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울림이었다.

행정과 지역사회, 종교계와 학계, 그리고 무엇보다 화천의 주인인 주민들이 이 가치에 공감하고 참여할 때, 최양업 신부의 헌신은 비로소 화천의 살아있는 문화가 될 것이다.

최양업 신부가 만산동의 험한 산세를 헤치며 찾아왔던 것은 17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가 걸었던 순례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길은 과거의 흔적을 지나, 오늘의 화천을 거쳐, 미래의 화천으로 도도하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없는 역사를 새로 지어낼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는 위대한 역사를 다시 발견하고, 그 가치를 미래 세대의 자산으로 올바르게 이어가면 된다. 그것이 화천이 가진 가장 오래된 미래이며, 지금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다.


 

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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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신문 (inews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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