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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8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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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도시는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 사람의 시간을 품은 도시, 화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은 도시 자체를 기억하기보다, 그 도시에서 보냈던 자신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기사입력 2026-07-1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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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도시는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 사람의 시간을 품은 도시, 화천

 

프롤로그

 

우리는 화천을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지방도시들은 지금도 저마다의 미래를 찾고 있다.

어느 곳은 더 큰 축제를 준비하고, 어느 곳은 새로운 관광지를 만들며, 또 다른 곳은 지역만의 특산품과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애쓴다. 전망대가 세워지고, 출렁다리가 놓이고, 체험시설이 들어선다. 모두 지역을 알리고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정말 도시를 그렇게 기억할까.

여행을 다녀온 지 몇 년이 지나면 어느 지역에 어떤 시설이 있었는지는 흐릿해진다. 하지만 어떤 도시는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속에 남는다.

왜 그럴까.

아름다운 풍경 때문일까.

맛있는 음식 때문일까.

유명한 건축물 때문일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은 도시 자체보다 그 도시에서 보냈던 자신의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그곳에서 사랑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부모와 마지막 여행을 했으며,

누군가는 가장 뜨거웠던 청춘의 한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도시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시간으로 남는다.

풍경이 아니라 삶의 기억으로 남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양양은 바다가 아니라 자유였고, 묵호는 항구가 아니라 오래된 그리움이었다.

그렇다면 화천은 어떨까.

많은 사람은 화천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DMZ와 군부대를 떠올린다.

접경지역이라는 인식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것은 분명 화천을 설명하는 중요한 모습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화천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많은 청년들이 이곳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고,

수많은 부모가 수료식 날 아들을 다시 품에 안았으며,

주민들은 군인들과 같은 마을에서 일상을 나누며 살아왔다.

또 많은 예비역이 세월이 흐른 뒤 가족과 함께 다시 화천을 찾곤 한다.

그들은 무엇을 찾아오는 것일까.

관광지를 찾아오는 것일까.

아니면 한때 자신의 삶이 머물렀던 시간을 다시 만나러 오는 것일까.

이 특집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화천을 특별한 도시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제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화천의 또 다른 모습을 함께 생각해 보자는 작은 제안이다. 기억은 과거를 붙잡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도시를 만들어 가는 가장 오래된 자산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도시의 미래는 새로운 시설을 얼마나 많이 만드는가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는 추억이 되고, 지역에게는 기록이 되며, 도시는 그 기록 위에서 미래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오래 기억되는 도시는 오래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화천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억하게 하는 도시일까.

이 특집은 그 질문을 따라 화천이라는 도시를 다시 천천히 읽어 보려 한다.

 

제1부

화천은 무엇을 기억하게 하는 도시인가

 

도시는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도시는 바다를 떠올리게 하고, 어떤 도시는 산을 생각하게 한다. 또 어떤 도시는 음식과 축제, 오래된 골목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오래도록 기억되는 도시를 떠올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풍경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과, 그곳에서 보냈던 자신의 시간을 함께 기억한다.

양양을 찾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느꼈던 자유와 젊음, 한여름의 바람이 함께 떠오른다.

묵호의 오래된 골목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골목 자체보다 그곳을 걸으며 만났던 시간과 마음을 오래 기억한다.

그렇다면 화천은 어떨까.

우리는 화천을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은 먼저 DMZ를 떠올린다.

접경지역이라는 이미지와 군부대, 철책을 생각한다.

그것은 분명 화천을 설명하는 중요한 모습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화천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화천을 취재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화천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눈에 보이는 시설보다 이곳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철책 아래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주민들이 있었고,

낯선 산골에서 스무 살 청춘을 시작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수료식 날 아들을 품에 안으며 안도의 눈물을 흘리던 부모가 있었고,

휴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던 연인들도 있었다.

전역한 뒤 수십 년이 흘러 가족과 함께 다시 화천을 찾는 예비역들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 화천은 관광지라기보다 자신의 삶 한 시절이 머물렀던 장소일지도 모른다.

신병교육대 수료식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군에서는 하나의 교육 일정이 끝나는 날이지만,

부모에게는 몇 주 만에 아들을 다시 만나는 날이고,

연인에게는 기다림이 끝나는 날이며,

가족에게는 안부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날 화천에서는 수많은 재회가 이루어진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하루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시간들이 사람들이 화천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예비역들에게도 화천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군 생활이 아름다운 추억이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기에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도 있을 것이다.

삼일리와 봉오리, 마현리와 풍산리.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지명이지만,

어떤 예비역에게는 스무 살의 자신이 머물러 있는 장소다.

그래서 다시 화천을 찾는 이유도 군부대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시절의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사람은 도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살았던 자신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도 화천은 단순한 접경지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오랜 세월 군인들과 이웃으로 살아왔고,

군인가족과 일상을 나누며,

접경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평범한 삶을 이어 왔다.

세월이 흐르고 군부대가 재편되면서 마을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그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화천이라는 도시를 지탱해 온 또 하나의 힘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화천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는 만남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청춘을 기억하며,

누군가는 공동체를 기억한다.

또 누군가는 전우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평화의 의미를 떠올린다.

기억의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DMZ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군부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폐막사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이런 질문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들은 앞으로 화천에서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이 질문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이 그 답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시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새로운 시설만큼이나, 이미 이곳에 쌓여 있는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도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기억은 사람에게는 추억으로 남지만, 지역에게는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다시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

어쩌면 화천의 미래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과 더불어, 오래된 기억을 어떻게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게 이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서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나는 도시

 

"신병교육대 수료식은 군의 일정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가족을 다시 만나는 하루이기도 하다."


수료식이 있는 날 아침이면 화천으로 들어오는 길의 풍경은 평소와 조금 다르다.

전국 곳곳에서 출발한 차량들이 하나둘 화천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대전에서.

차 번호판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그날만큼은 목적지가 같다.

신병교육대 수료식.

누군가는 아들을 만나러 오고,

누군가는 손자를 만나러 오며,

누군가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화천에서는 오랫동안 익숙하게 보아 온 풍경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은 결코 흔한 일상이 아니다.

군의 일정으로 보면 수료식은 교육과정의 마무리다.

그러나 가족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입소하던 날 짧게 손을 흔들며 헤어진 뒤,

몇 주 동안 마음 놓고 안부를 묻기 어려웠던 시간을 지나,

비로소 다시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다.

부모는 하루하루 안부를 걱정했고,

연인은 달력을 넘기며 그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수료식은 그렇게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이다.

행사가 끝나면 가족들은 군복을 입은 아들을 향해 걸어간다.

누군가는 꼭 안아 주고,

누군가는 등을 두드려 주며,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얼굴만 바라본다.

"잘 지냈니."

"많이 힘들었지."

짧은 말 몇 마디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걱정과 안도가 함께 담겨 있다.

그날 화천에서는 이런 만남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생각해 보면 이 만남은 누군가 기획한 행사가 아니다.

관광상품도 아니고,

축제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가정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삶의 한 장면이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료식을 마친 가족들은 화천에서 몇 시간을 함께 보낸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 들르고,

사진을 남기며,

짧은 휴가를 함께 보낸다.

지역 상인들에게는 평범한 하루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족에게는 평생 잊기 어려운 시간이 된다.

'아들을 다시 안았던 곳.'

'군인이 된 아들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던 곳.'

시간이 흘러도 그 기억 속에는 화천이라는 이름이 함께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도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살았던 자신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신병교육대를 주로 군사시설이나 지역경제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왔다.

장병 수가 얼마나 되는지,

지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부대가 이전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살펴보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신병교육대는 오랫동안 수많은 가족이 다시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가치는 통계로 쉽게 계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눈에 띄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글이 신병교육대를 관광자원으로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수료식을 하나의 행사로 포장하자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이미 존재하는 이 소중한 시간을 조금 더 따뜻하게 품어 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다.

가족들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

함께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풍경,

짧은 몇 시간을 조금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도시.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화천이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소중한 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차곡차곡 기록해 다음 세대에도 전하는 일이다.

수료식이 끝나면 장병들은 다시 군 생활을 이어 가고,

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도시는 때로 거대한 시설보다,

한 사람의 삶 속에 남은 한 장면으로 더 오래 기억된다.

신병교육대 수료식은 화천을 그런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가장 따뜻한 장면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제3부

청춘은 왜 다시 화천을 찾는가

 

"세월이 흘러 다시 삼일리와 봉오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엇을 찾아오는 것일까."


화천으로 들어서는 길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도로는 넓어졌고, 장병들로 붐비던 거리도 조용해졌다. 군용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던 길에는 승용차가 오가고, 군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줄지어 걷던 자리에는 한적한 마을 풍경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화천을 찾은 예비역들은 이상하리만큼 길을 잘 기억한다.

"이 길이 맞았던 것 같은데."

"저기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부대까지는 여기서 걸어 다녔지."

풍경은 달라졌지만 몸은 길을 기억하는 것처럼 보인다.

산의 모양과 굽이진 도로,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오래전 시간을 하나씩 불러낸다.

목적지는 삼일리와 봉오리, 마현리와 풍산리.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지명이지만,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처음 군복을 입었던 곳.

부모의 품을 떠나 스스로 견디는 법을 배웠던 곳.

두려움과 자신감이 함께 자라던 곳.

그곳에는 어쩌면 아직도 스무 살의 자신이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군 생활이 아름다운 추억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혹독한 추위도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던 행군도 있었으며,

가족이 그리워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하루라도 빨리 전역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힘들었던 시간은 희미해지고,

함께 웃고 버텼던 사람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어쩌면 예비역들이 다시 화천을 찾는 이유도 군 생활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견뎌 낸 자신의 젊은 날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도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살았던 자신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삼일리와 봉오리, 마현리와 풍산리에는 그렇게 수많은 청춘의 시간이 쌓여 있다.

한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버지가 이곳에서 군 생활을 했고,

세월이 흘러 아들이 같은 지역에서 군복을 입기도 했다.

형제가 같은 길을 걸었고,

친구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같은 연병장을 기억한다.

기수와 부대는 달라도 기억의 모습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입소하던 날의 긴장,

동기들과 나누었던 위로,

휴가를 기다리던 설렘,

전역하던 날의 홀가분함.

이런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그 많은 기억은 지금 어디에 남아 있을까.

부대는 재편되고,

막사는 사라지거나 다른 용도로 바뀌고,

장병들이 드나들던 식당과 상점도 하나둘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것을 이어 줄 기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진은 각자의 앨범 속에,

편지는 서랍 깊숙한 곳에,

전우들의 이야기는 모임이 끝나면 다시 개인의 추억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사라지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과거의 군부대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까.

아니면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기록해 두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일일까.

군 복무 시절의 사진 한 장,

부모에게 보냈던 편지,

전우들의 기억,

장병들과 함께 살아온 주민들의 이야기.

이런 기록들이 모인다면 그것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 하나의 지역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비역이 가족과 함께 다시 화천을 찾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예전 부대가 있던 길을 천천히 걸으며 말한다.

"여기로 매일 걸어 다녔어."

"저 산을 넘으면 부대가 있었지."

"휴가 나가기 전 이 식당에서 밥을 먹곤 했어."

그 이야기를 듣는 자녀는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스무 살을 함께 걷게 된다.

그런 시간이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화려한 체험시설이 아니어도 괜찮다.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주민과 예비역이 서로의 기억을 들려줄 수 있는 자리,

그리고 그 시간을 다음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기록.

어쩌면 화천만이 만들어 갈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은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화천을 거쳐 간 예비역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오랫동안 수많은 청년들의 삶 한가운데 화천이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국으로 흩어졌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남아 있다.

도시는 사람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군인은 전역하고,

주민은 나이를 먹으며,

건물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하지만 사람의 시간을 기억하는 도시는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을 기록하는 도시는 더 오래 살아남는다.

예비역들이 다시 화천을 찾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군대를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한때 이곳에서 두려워하고,

견디고,

웃고,

성장했던 자신의 청춘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어쩌면 화천이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은 군부대 자체가 아니라,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 기억을 하나씩 기록해 나갈 때, 삼일리와 봉오리, 마현리와 풍산리는 사라진 군부대의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젊은 날을 다시 만나는 기억의 장소로 오래 남게 될 것이다.

 


 

제4부

군부대가 떠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군부대가 떠난 뒤 남는 것은 비어 있는 건물일까. 아니면 그곳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일까."


군부대가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경제적 변화다.

상가 매출은 얼마나 줄어들까.

빈집은 얼마나 늘어날까.

지역 인구는 얼마나 감소할까.

지역사회가 이런 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군부대가 떠난다는 것은 정말 병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현리와 풍산리의 폐막사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질문이 떠오른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연병장.

문이 닫힌 생활관.

잡초가 자라기 시작한 운동장.

한때 수많은 장병이 오가던 공간은 이제 조용한 시간을 품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생활관에서는 스무 살 청년들이 처음 공동체의 삶을 배웠다.

낯선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며 전우가 되었고,

고향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을 그리워했다.

첫 휴가를 손꼽아 기다렸고,

전역 날짜를 달력에 표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누군가에게 그곳은 군사시설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치열하게 성장했던 시간의 배경이었다.

그 기억은 장병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군부대와 함께 살아온 주민들에게도 군인은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새벽이면 군용차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됐고,

휴가를 나온 장병들은 식당과 이발소, 슈퍼를 자연스럽게 드나들었다.

농번기에는 함께 일손을 거들기도 했고,

폭설이 내린 날에는 마을 곳곳에서 서로를 도왔다.

군인과 주민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온 이웃이었다.

군인가족에게도 화천은 삶의 한 시절이었다.

관사에서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보내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간 시간이 있었다.

전출 명령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떠났지만,

화천에서 보낸 몇 해는 가족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폐막사는 무엇일까.

비어 있는 건물일까.

아니면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는 공간일까.

우리 사회는 최근 산업시설과 근대건축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폐광은 산업유산으로,

옛 철도역은 문화공간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군사도시였던 화천의 폐막사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건물을 모두 보존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활용 방안을 하나로 정하자는 뜻도 아니다.

다만 그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함께 남겨 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생활관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부모를 그리워하던 청년의 기억은 남길 수 있다.

식당은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장병들과 주민이 함께 나누었던 일상은 기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진 한 장,

편지 한 통,

주민들의 구술,

군인가족의 추억.

그런 기록들이 모인다면 그것은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생활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도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살았던 자신의 시간을 기억한다.

그 시간을 기록하는 일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지역의 역사로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는 군사시설을 단순히 전쟁의 흔적으로 남기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바꾸어 온 사례들이 있다.

그곳에서 주목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누가 기다렸는지,

누가 웃었는지,

누가 울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는지를 기록한다.

사람들은 시설보다 사람의 이야기에 더 오래 마음을 두기 때문이다.

화천도 그런 시선을 한 번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폐막사의 가치는 콘크리트 구조물 자체보다,

그 안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군부대는 떠날 수 있다.

건물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그 시간을 차분히 기록해 둘 때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음 세대가 마현리와 풍산리를 찾았을 때,

"여기에는 군부대가 있었습니다."라는 설명보다,

"이곳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갔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먼저 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

도시는 건물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곳을 살아간 사람들의 시간이 모일 때 비로소 하나의 역사가 된다.

기억은 사람에게는 추억으로 남지만,

기록되는 순간 한 도시의 문화가 되고,

다음 세대가 다시 찾아올 이유가 된다.

어쩌면 화천이 오래 간직해야 할 것은 폐막사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웃고,

견디고,

생활했던 사람들의 삶인지도 모른다.

그 기억을 기록으로 남길 때 군부대가 떠난 자리도 더 이상 과거의 빈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품은 또 하나의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제5부

 

화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도시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풍경일까, 시설일까. 아니면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일까."


도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먼저 풍경을 떠올린다.

어디에 산이 있는지,

어떤 강이 흐르는지,

어떤 축제가 열리는지를 먼저 말한다.

화천도 크게 다르지 않다.

DMZ,

평화의댐,

파로호,

백암산,

신병교육대….

화천을 설명하는 단어들은 대부분 장소와 시설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도시는 정말 풍경만으로 기억될까.

풍경은 도시의 무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무대 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의 도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화천은 오랫동안 군인들과 함께 살아온 지역이다.

수많은 청년이 이곳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고,

군인가족도 삶의 한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군인들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 곁에는 주민들이 있었다.

장병들이 쉬는 날이면 따뜻한 밥을 내어 주던 식당,

군복을 고쳐 주던 옷수선집,

휴가를 앞둔 병사들의 머리를 다듬어 주던 이발소,

외출 나온 장병을 반갑게 맞아 주던 작은 슈퍼.

이들에게 군인은 손님이라기보다 늘 얼굴을 마주하던 이웃이었다.

군부대가 있는 마을에서는 주민과 군인이 같은 시간을 살아갔다.

농번기에는 장병들이 일손을 거들기도 했고,

폭설이 내리면 함께 길을 치우기도 했다.

명절이면 타지에서 온 젊은 장병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네는 일도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특별한 미담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천의 역사는 군인들의 역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 곁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 온 주민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접경이라는 현실 속에서 농사를 지었고,

군사규제를 견디며 마을을 지켰으며,

군인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받아들였다.

군인은 바뀌고,

지휘관도 바뀌고,

부대도 옮겨 갔다.

그러나 마을을 지켜 온 사람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시간을 숫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오늘의 화천을 이해하려면 그 시간 역시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화천을 이야기할 때 DMZ를 먼저 말했고,

군부대를 이야기했으며,

안보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한 존재처럼 지나쳐 온 것은 아닐까.

도시는 시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시설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모여 하나의 도시가 된다.

화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화천을 이야기할 때는 주민들의 삶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군인과 함께 살아온 세월,

군인가족과 이웃이 되어 보낸 시간,

전역한 예비역이 다시 찾아왔을 때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들.

이런 이야기들도 화천을 이루는 소중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도시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꼭 유명한 건축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여행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화천도 그런 시선으로 다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철책보다,

그 철책 아래에서 살아온 사람들.

DMZ보다,

평화를 일상으로 살아온 주민들.

어쩌면 화천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아직 관광상품으로 이름 붙이지 못한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식당.

마을 어귀의 작은 슈퍼.

장병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웃.

전역한 청년에게 "오랜만이네." 하고 먼저 말을 건네는 사람들.

이런 풍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있어야만 생겨나는 풍경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도 해 보고 싶다.

앞으로 화천은 무엇을 보여주는 도시가 될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만나게 하는 도시가 될 것인가.

정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다만 화천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람은 거창한 해설을 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주민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이 화천의 역사를 만들었고,

그들의 기억이 지금의 화천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건물을 많이 세운다고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기억할 때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화천을 가장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도 DMZ나 군부대가 아니라, 평생 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온 사람들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제6부

 

떠나는 청춘의 마지막 한국

 

"오음리는 단순한 군사 지명이었을까. 아니면 수많은 청년과 가족들이 가장 긴 밤을 보냈던 기억의 장소였을까."


도시는 때로 한 시대를 품고 살아간다.

어떤 도시는 산업화를 기억하고,

어떤 도시는 민주화를 기억하며,

또 어떤 도시는 전쟁을 기억한다.

화천에도 그런 시간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오음리라는 이름은 조금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많은 사람에게 오음리는 군부대가 있던 곳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곳은 수많은 청년이 낯선 전쟁터로 떠나기 전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였고,

훈련을 마친 뒤 월남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무사히 돌아왔고,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또 누군가는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속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전쟁의 기억을 안고 살아야 했다.

오음리는 그런 출발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 시절의 밤을 우리는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떠나기 전날,

부모를 떠올렸을 청년도 있었을 것이고,

고향집을 생각하며 쉽게 잠들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약혼자와 가족, 친구들을 떠올리며 긴 밤을 견뎠던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 두려움과 불안은 기록으로 남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오음리의 이야기는 군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들은 떠났고,

남편은 전쟁터로 향했으며,

부모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전쟁은 먼 나라에서만 치러진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졌을 것이다.

세월은 흘렀다.

월남전은 역사 속의 사건이 되었고,

오음리도 조용한 마을이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기억하는 한,

그 시간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참전용사들은 전우의 이름을 기억하고,

떠나던 날의 하늘을 이야기하며,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를 말한다.

그 기억 속에는 화천이라는 이름도 함께 남아 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이야기할 때 건물과 유적을 먼저 떠올린다.

비석을 세우고,

전시관을 만들며,

기록물을 보존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사람을 통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오음리의 의미도 오래된 막사보다,

그곳을 떠났던 청년들의 시간,

그리고 그들을 기다렸던 가족들의 마음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에는 전쟁의 흔적을 평화의 기억으로 이어 가는 도시들이 있다.

그들은 전쟁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이 남긴 상처를 기록하고,

그 상처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오음리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총성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청년들의 마음.

승리가 아니라,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던 가족들의 기도.

그런 이야기들이야말로 다음 세대에게 더 오래 남는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이 글이 오음리를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은 아니다.

다만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다.

참전용사의 증언,

가족들의 편지,

당시의 사진과 일기.

이런 기록들이 모인다면 그것은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교육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화천에는 DMZ가 있다.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평화를 생각한다.

하지만 평화는 철책만으로 배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음리에서 전쟁을 앞두고 두려움을 견뎠던 청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기다리던 가족들의 시간을 함께 돌아볼 때,

평화는 조금 더 가까운 삶의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화천이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은 전쟁 자체가 아니라,

전쟁을 견디며 살아낸 사람들의 삶인지도 모른다.

오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오래된 군사시설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떠났던 청춘과,

그들을 기다렸던 가족들의 시간이다.

도시는 전쟁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을 살아낸 사람들을 기억할 때 더 오래 남는다.

그 시간을 잊지 않는다면,

오음리는 과거의 군사 지명을 넘어,

사람을 통해 평화를 생각하게 하는 조용한 기억의 장소로 오래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제7부

 

규제가 남긴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켜 낸 것

 

"오랫동안 우리는 화천을 '규제의 땅'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규제는 무엇을 남겼을까."


화천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규제.'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상수원 보호라는 이유로,

많은 개발이 제한되어 왔다.

도로를 놓는 일도 쉽지 않았고,

공장을 세우는 일도 어려웠다.

재산권의 제약도 있었으며,

지역은 오랫동안 성장의 기회를 뒤로 미뤄야 했다.

그래서 화천의 역사는 종종 '희생'이라는 말과 함께 이야기되곤 했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규제가 남긴 것은 불편만이 아니었다.

시간도 함께 남겼다.

개발이 멈춘 사이 숲은 자랐고,

강은 흐름을 이어 갔으며,

산은 오랜 시간을 견디며 제 모습을 간직했다.

오늘의 화천에는 넓은 숲이 있고,

맑은 물길이 있으며,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는 자연이 남아 있다.

누군가는 개발이 늦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금의 자연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숲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무는 사람보다 훨씬 천천히 자라고,

한 세대가 심은 숲은 다음 세대가 그 그늘을 누린다.

화천의 숲도 그렇게 자라 왔을 것이다.

누군가 거창한 계획을 세워 만든 숲이라기보다,

오랜 시간이 조금씩 키워 온 숲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파로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물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물을 어떤 의미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상수원이라는 이유로,

보전이라는 이유로,

늘 보호의 대상이었던 물.

그런데 이제는 다른 질문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떻게 더 많이 개발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 자연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자연은 소비하고 끝나는 자원이 아니라,

다음 세대와 함께 이어 가야 할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도시는 사라진 자연을 되찾기 위해 많은 비용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버려진 공장을 숲으로 바꾸고,

오염된 강을 되살리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화천에는 이미 오랜 시간이 남겨 준 자연이 있다.

돈으로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시간이 천천히 지켜 낸 자연이다.

하지만 자연만으로 도시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자연에도 사람들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어야 한다.

숲은 단순한 산림이 아니라,

접경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스며 있는 풍경일 수도 있고,

강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삶을 함께 품어 온 공간일 수도 있다.

DMZ의 생태 역시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분단의 시간 속에서도 생명이 이어져 왔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기록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바라볼 때 자연은 풍경을 넘어 기억이 된다.

그래서 앞으로 화천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자연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야기할 것인가인지도 모른다.

왜 이 숲이 남아 있는지,

왜 이 강이 지금까지 흐르고 있는지,

왜 이 땅에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는지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자연은 단순한 관광자원을 넘어 도시의 역사와도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규제를 미화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희생을 가볍게 말하자는 뜻도 아니다.

다만 그 시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오늘의 화천이 가진 의미를 다시 읽어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다.

군사규제를 견디며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

상수원을 지키며 살아온 마을,

접경이라는 현실을 일상으로 받아들였던 주민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숲도,

지금의 물도,

지금의 화천도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도시는 이제 높은 건물만으로 경쟁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오래된 자연을 품고 있는지,

그 자연 속에 어떤 사람들의 삶이 함께 남아 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전할 것인지가 점점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화천을 '규제의 도시'로만 기억하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화천은 오랜 시간이 지켜 낸 자연과,

그 시간을 함께 견뎌 온 사람들이 만들어 온 도시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자연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 자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기억한다.

그 시간이 앞으로도 화천을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에필로그

 

화천은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도시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더 오래 기억된다."


이 특집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도시는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일곱 편의 글을 쓰는 동안 그 질문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도시를 건물과 시설로 설명해 온 것은 아닐까.

무엇을 만들 것인지,

무엇을 개발할 것인지,

무엇을 유치할 것인지에 많은 시간을 쏟아 왔다.

그것은 분명 도시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한 도시를 오래 기억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였다.

이번 연재를 준비하며 화천을 다시 걸었다.

DMZ를 바라보았지만 철책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 아래에서 오랜 세월 삶을 이어 온 주민들이 떠올랐다.

신병교육대를 생각했지만 군사시설보다 기다림 끝에 가족을 다시 만나는 사람들이 먼저 떠올랐다.

삼일리와 봉오리에서는 군부대보다 자신의 스무 살을 다시 찾아오는 예비역들의 시간이 먼저 보였다.

마현리와 풍산리의 폐막사에서는 비어 있는 건물보다 그 안에서 함께 웃고,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이 떠올랐다.

오음리를 생각하면서는 전쟁보다 그곳을 떠나야 했던 청년들과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던 가족들의 마음이 먼저 떠올랐다.

숲과 강을 바라보면서는 자연보다 오랜 시간 그 땅을 지키며 살아온 주민들의 시간을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화천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사람을 다시 읽는 일이었다.

이 글은 화천을 특별한 도시라고 말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제안하기 위해 쓴 글도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화천을 기록하며 문득 품게 된 생각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사람은 도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살았던 자신의 시간을 기억한다.

이번 특집은 그 질문에서 시작했고, 결국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왔다.

부모가 아들을 다시 만난 하루.

청춘이 가장 치열했던 시간.

전우와 함께 견뎌 낸 계절.

군인과 주민이 한마을에서 살아온 일상.

접경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평범한 삶을 이어 온 사람들의 시간.

이런 기억들이 모여 지금의 화천을 만들었다.

앞으로 화천도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철도가 들어오고,

새로운 사업이 추진되며,

도시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그 변화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다.

도시는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오래된 것을 기억할 때 더욱 깊어진다.

어쩌면 화천의 미래도 그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이 특집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제안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화천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화천에는 이미 수많은 기억이 있다.

수료식 날 다시 만난 가족들의 웃음이 있고,

삼일리와 봉오리에서 청춘을 보낸 예비역들의 시간이 있으며,

군인과 함께 살아온 주민들의 삶이 있다.

오음리를 떠났던 청년들의 두려움과,

파로호와 숲을 지켜 온 사람들의 시간도 함께 남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이미 이 땅에 쌓여 있는 기억을 기록하고,

흩어진 이야기를 이어 주며,

사람들이 다시 자신의 시간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수료식 가족들의 재회를 기록하고,

예비역들의 군 생활을 구술로 남기며,

주민들이 기억하는 군인들의 일상을 모으고,

군인가족의 사진과 편지,

마을의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씩 아카이브로 축적하는 일이다.

그렇게 모인 기록은 언젠가 화천을 다시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다시 만나는 길이 되고, 지역의 역사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도시는 건물을 남기는 곳이 아니다.

사람의 시간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곳이다.

언젠가 누군가 화천을 떠올릴 때,

아름다운 풍경보다,

DMZ보다,

파로호보다 먼저,

"그곳에는 내 삶의 한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아진다면,

화천은 이미 오래 기억되는 도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특집이 제안하는 화천의 새로운 도시 전략이다.

사람의 시간을 기록하는 도시.

기억을 미래의 자산으로 만드는 도시.

그리고 한 사람의 추억을 모두의 역사로 이어 가는 도시.

화천은 이미 그 길을 걸을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일이다.


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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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신문 (inews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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