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화천, ‘통로’가 아니라 ‘중심’이어야 한다
국가 교통망 계획은 단순히 도로와 철도를 긋는 일이 아니다. 어느 지역에는 사람이 모이고 산업이 들어오게 하며, 어느 지역에는 앞으로 수십 년을 기다리라는 판정을 내리는 일이다. 그래서 지도 위의 선 하나, 역 하나, 나들목 하나가 지역의 미래를 좌우한다.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강원특별자치도의 미래 교통망을 결정할 국가 사회간접자본, 즉 SOC 계획 발표가 잇따라 예정돼 있다.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서 국가철도망 구축계획과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이르기까지 강원도의 오랜 교통 소외를 해소할 중요한 시기다.
그런데 최근 공개되고 있는 강원도 주요 교통망 자료를 보고 있으면 화천군민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다.
춘천, 철원, 원주, 강릉, 속초, 삼척 등 주요 도시의 이름은 굵은 선과 함께 선명하게 등장한다. 새로운 고속도로와 철도 계획도 곳곳에서 교차한다. 그러나 그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화천은 어디에 있는가.
더 정확하게 묻고 싶다.
국가와 강원도의 미래 교통망에서 화천은 목적지인가, 아니면 다른 도시를 연결하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통로인가.
이 질문에 이제는 정부와 강원특별자치도, 그리고 지역 정치권이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이름은 화천을 지나가는데, 혜택도 화천에 남는가
대표적인 사업이 춘천과 철원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구상이다.
이 사업은 그동안 춘천~화천~철원을 연결하는 남북 교통축으로 설명돼 왔다. 화천은 분명 이 사업의 중요한 경유 지역이다. 춘천과 철원을 직접 연결하는 새로운 고속교통축이 만들어진다면 접경지역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지역 간 이동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고속도로가 행정구역을 지난다는 사실과 그 지역 주민이 실제 혜택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데 있다.
고속도로는 지나가는데 나들목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주민들에게 그 도로는 가까운 도로가 아니다. 터널과 교량으로 산과 계곡을 통과하면서 지역 생활권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지역에는 소음과 토지 이용 제한만 남고 실질적인 교통 편익은 다른 도시가 가져갈 수도 있다.
최근 공개된 개념도를 보면 춘천에서 철원으로 향하는 노선은 화천군 서부지역을 통과하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크다. 물론 개념도 한 장만으로 최종 노선과 나들목 위치를 단정할 수는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물어야 한다.
화천군에는 몇 개의 나들목이 설치되는가.
사내면 생활권의 접근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상서면과 화천읍 주민들은 새로운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위해 얼마나 이동해야 하는가.
국도 5호선과 국도 56호선, 지방도와의 연결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화천군민의 생활권과 관광·산업 기반을 살리는 연결도로 계획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 없이 단순히 “고속도로가 화천을 통과한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역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통과 거리의 길이가 아니라 접근성의 질이다.
고속도로의 이름에 화천이 들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화천군민이 실제로 그 도로에 올라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원주~춘천~철원 철도 문제다
철도 계획은 더욱 혼란스럽다.
강원특별자치도는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주~춘천~철원을 잇는 내륙 종단 철도축을 건의해 왔다. 원주와 횡성·홍천·춘천을 연결하고 장기적으로 강원 북부와 철원까지 이어지는 남북 내륙철도망 구상이다.
따라서 “원주~철원 철도계획이 원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민들의 의문은 충분히 타당하다.
그런데 공개되는 자료들은 서로 일관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자료에서는 ‘원주~춘천 철도’라고 표현하고, 다른 설명에서는 ‘원주~춘천~철원 내륙철도’라고 한다. 지도에서는 원주에서 춘천으로 올라오는 철도축은 비교적 분명하게 표시하면서도 춘천 이북의 철원 연결 구상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춘천 이북 구간이다.
지도상 춘천과 철원을 연결하는 굵은 축은 고속도로로 표시돼 있는데, 원주~춘천~철원 철도 구상의 북부 구간은 별도의 철도 선형으로 쉽게 식별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일반 주민이 지도를 보면 “철도가 춘천에서 끝나는 것인가”, “철원까지 간다는 것은 장기 구상에 불과한 것인가”, “춘천 이북의 경유지는 어디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국가 SOC 계획은 전문가들끼리만 이해하는 암호문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철도와 고속도로를 기다려 온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약속의 문서여야 한다. 사업 명칭과 지도, 설명 자료가 서로 다르게 읽힌다면 그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화천으로서는 더 민감하게 볼 수밖에 없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원주~춘천~철원 철도가 반드시 화천읍을 경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일부 논의에서는 철원·춘천·홍천·횡성·원주를 연결하는 축으로 설명되고 있어, 화천은 주요 경유지 명칭에서 빠져 있다.
그렇다면 화천은 질문해야 한다.
원주~춘천~철원 철도의 정확한 사업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춘천~철원 구간은 제5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어떤 형태로 반영을 추진하고 있는가.
북부 구간의 구체적인 노선 대안은 검토됐는가.
화천 경유안은 검토 대상에 포함된 적이 있는가.
철도에서 화천이 제외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체 교통망 계획은 무엇인가.
이것은 억지를 부리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 국가 교통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지역이 자신의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이다.
화천역 하나로 화천 전체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동서고속화철도의 화천역이 건설되고 있으니 화천도 철도 시대를 맞는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화천역은 중요하다. 화천 역사상 매우 의미 있는 교통 기반시설이며 관광과 지역경제에도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봐야 한다.
화천역이 들어서는 간동면과 화천읍의 생활권은 같지 않다. 사내면, 상서면, 하남면 주민의 이동 여건도 각각 다르다. 산악지형이 많은 화천은 행정구역 안에서도 생활권 간 이동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화천역이 생기니 화천의 교통 문제가 해결됐다”는 식의 접근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철도역 하나가 생기는 것과 군 전체의 교통망이 개선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화천역과 화천읍을 연결하는 교통망, 화천역과 군내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대중교통 체계, 사내·상서지역과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접근도로, 국도 5호선과 56호선의 위험구간 개선 등이 함께 추진돼야 비로소 하나의 교통망이 된다.
지금 화천에 필요한 것은 점 하나가 아니다.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이며, 그 선들이 다시 화천의 생활권을 하나로 묶는 촘촘한 교통망이다.
화천은 언제까지 다른 도시 사이에 숨어 있어야 하나
강원도의 SOC 사업을 보면 사업 이름은 대체로 큰 도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춘천과 철원, 춘천과 속초, 원주와 춘천, 제천과 삼척 같은 식이다.
교통망 사업의 특성상 출발지와 종착지를 중심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는 지역의 운명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형 교통망이 통과하는 중간지역일수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잘 설계된 교통망은 중간지역을 새로운 거점으로 성장시킨다. 반대로 잘못 설계된 교통망은 중간지역을 더욱 빠르게 쇠퇴시킬 수도 있다. 사람들이 더 쉽게 빠져나가고 소비와 경제활동이 대도시로 흡수되는 이른바 빨대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천이 걱정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고속도로는 지나가지만 차들이 멈추지 않고, 철도는 주변 지역을 연결하지만 화천 생활권은 비껴가며, 관광객은 더 빠른 길을 이용해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화천은 도로를 위한 공간만 제공하는 지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군민들이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국가 안보를 위해 각종 규제와 개발 제한을 감내한 접경지역 주민들이 국가 교통망에서도 최소한의 이동권과 발전 기회를 보장받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 요구는 정당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화천의 요구안’이다
국가계획 발표가 임박할수록 지역에서는 “반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제는 노력이라는 추상적인 표현만으로 부족하다.
화천군은 주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춘천~화천~철원 고속도로와 관련해 화천군이 정부와 강원도에 요구한 구체적인 노선 대안은 무엇인지, 희망하는 나들목 위치는 어디인지, 화천읍과 상서면·사내면의 접근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원주~춘천~철원 철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어느 단계까지 논의되고 있는지, 춘천 이북 구간의 노선은 어떤 방식으로 검토되고 있는지, 화천군은 철도 경유 또는 연계교통망 확보를 위해 어떤 공식 의견을 제출했는지 군민에게 알려야 한다.
국도 56호선 사내~사북 구간을 비롯한 위험도로 개선과 터널화 요구, 국도 5호선 개선, 접경지역 간선도로망 확충 문제도 각각의 사업으로 흩어 놓아서는 안 된다.
화천의 미래 교통망이라는 하나의 큰 그림 안에서 묶어야 한다.
고속도로와 철도, 국도와 지방도, 화천역 접근교통을 따로 추진하면 각각의 사업은 생길 수 있어도 화천의 교통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화천군 종합 광역교통 전략’이다.
그리고 그 전략에는 적어도 세 가지 원칙이 담겨야 한다.
첫째, 화천을 단순 통과하는 노선이 아니라 화천 생활권과 직접 연결되는 교통망이어야 한다.
둘째, 화천읍·간동면·하남면·상서면·사내면의 서로 다른 생활권을 하나의 광역교통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
셋째, 국가 SOC 사업의 확정 이후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노선과 역, IC가 결정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노선이 확정된 뒤에는 늦다.
역 위치가 결정된 뒤에도 늦다.
나들목 위치가 정해진 다음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늦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지도는 그림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개념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개념도 한 장의 선형이 실제 실시설계 노선과 똑같을 수는 없다. 지도 한 장만 보고 특정 지역의 배제를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니 기다리라”는 말만 하다가 정작 모든 것이 확정된 뒤에 후회해서도 안 된다.
지역 SOC의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지역이 그 말을 들었다.
검토 중이라고 했다.
확정된 것이 없다고 했다.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다 노선은 결정됐고 역은 다른 곳으로 갔으며 나들목은 생활권에서 멀어졌다.
그때 가서 문제를 제기하면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비슷하다.
이미 결정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천은 지금 물어야 한다.
지도에 화천의 이름이 몇 번 등장하는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그 선이 화천군민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자는 것이다.
고속도로가 화천을 지난다면 어디에서 진입할 수 있는가.
철도가 강원 내륙을 남북으로 연결한다면 화천은 어떤 역할을 맡는가.
동서고속화철도 화천역은 군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 동안 감수한 희생에 대해 국가는 어떤 교통 인프라로 응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면 화천의 소외감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의 문제다.
화천은 스쳐 가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화천은 지리적으로 변방이 아니다.
춘천과 철원을 연결하고, 수도권 동북부와 강원 북부를 잇고, 남북 교류 시대에는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다.
문제는 그 가능성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있다.
화천을 큰 도시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군으로 보면 도로는 가장 짧은 거리로 지나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화천을 영서 북부의 중요한 생활·관광·접경 거점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속도로 IC의 위치가 달라져야 하고, 철도와의 연계 전략이 달라져야 하며, 국도 개량의 우선순위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화천군과 지역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정부와 강원도의 발표를 기다리는 관전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화천에 필요한 노선과 나들목, 연결도로와 철도 연계망을 구체적인 지도와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 군민에게 공개하고, 강원도에 요구하고, 중앙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철원·춘천 등 인접 지자체와 공동전선을 만들되 화천의 실익은 분명하게 챙겨야 한다.
협력과 양보는 다르다.
상생과 소외도 다르다.
화천을 통과하는 사업이 곧 화천을 위한 사업인 것도 아니다.
국가 교통망의 선 하나가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다.
화천은 더 이상 다른 도시의 이름 뒤에 숨어 있어서는 안 된다.
철도에서도, 고속도로에서도, 국도에서도 화천의 생활권과 미래가 분명하게 반영돼야 한다.
화천군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우리 땅을 지나가는 도로에 제대로 올라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연결하는 철도망에서 화천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 달라는 것이다.
수십 년간 감내한 접경지역의 희생만큼 최소한의 이동권과 발전 기회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 정부와 강원특별자치도가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화천군 행정과 정치권도 답해야 한다.
화천을 또 하나의 통과지역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영서 북부 교통망의 당당한 중심으로 세울 것인가.
지금 그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