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7년 전 화천에서 시작된 꿈, 평화경제특구의 길을 만나다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에서 제1차 평화경제특구 기본계획까지
마케팅 전문가에서 블루베리 농업인으로…김응수는 왜 휴전선 너머의 시장을 바라봤나
2019년 “북한에서 생산하면 누가 사고, 어떻게 대가를 지불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
2020년 화천 채향원에서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 세상에 알려
생산·가공·물류·시장·수익환원을 잇는 경제협력 구상…7년 뒤 국가정책과 새로운 접점
평화를 기다리는 특구가 아니라 오늘 산업을 준비하고 미래의 협력으로 확장하는 화천형 모델 가능성
2020년 7월 11일.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의 블루베리 농원 채향원 앞마당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여름 햇볕 아래 보랏빛 블루베리가 익어가던 그날, 사람들은 단순히 블루베리를 따기 위해 화천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날 화천의 작은 농장에서 나온 이야기는 휴전선 너머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남한의 재배기술과 묘목, 농자재를 북녘의 땅과 연결하고, 장차 그곳에서 생산된 블루베리를 남측의 가공산업과 물류망, 국내외 시장으로 이어 남과 북 모두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구상이었다.
이름은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
그날의 선포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행사가 아니었다.
그보다 앞선 2019년 가을.
화천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던 김응수 채향원 대표는 이미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북한에서 블루베리 재배가 시작되고 몇 년 후 수확이 시작된다면 어떻게 소비시키고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인가?”
그리고 그는 스스로 답했다.
“문제는 경제이고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로부터 7년.
2026년 제1차 평화경제특구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7년 전 화천의 농업 현장에서 시작된 오래된 질문을 이제 다시 꺼내볼 이유가 생겼다.
■ 그는 왜 농사보다 시장을 먼저 물었을까
김응수의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어떤 시선으로 농업을 바라봤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응수는 단순히 블루베리를 재배하다가 어느 날 남북경협을 떠올린 농업인이 아니었다.
마케팅을 연구하고 가르쳤던 그는 화천으로 들어와 직접 땅을 일구고 블루베리를 재배했다.
생산자의 현실과 시장의 논리를 함께 경험한 독특한 이력의 농업인이었다.
그의 관심은 농장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북방지역의 블루베리에 관심을 가졌고 러시아와 연결된 블루베리 도입 경험도 있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블루베리 농업과 유통 현장을 살폈고 일본의 생산과 소비시장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본 것은 단순히 어느 나라의 블루베리가 더 잘 자라는가가 아니었다.
어디에서 생산하는가.
누가 수확하는가.
어디에서 선별하고 저장하는가.
누가 물류를 담당하는가.
어떤 시장에서 소비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경제적 이익이 어떻게 참여자들에게 돌아가는가.
그는 농업을 재배만으로 보지 않았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시장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2019년 그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업은 현실적이어야 하고 이해 당사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어야 성립된다.”
그리고 곧바로 생산 이후를 물었다.
북한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할 수 있느냐는 질문만 하지 않았다.
수확한 블루베리를 누가 살 것인가를 물었다.
묘목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만 생각하지 않았다.
몇 년 뒤 열린 결실을 어떻게 판매하고 그 대가를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김응수 구상의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북측에서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보다, 생산한 것을 누가 사고 어떻게 소득으로 돌려줄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다.
■ ‘지원’이 아니라 ‘경제’를 생각했다
남북 농업협력이라고 하면 흔히 묘목과 비료, 농기계와 영농기술 지원부터 떠올린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김응수의 생각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묘목을 지원한다.
재배기술을 전수한다.
농자재와 관수시설을 지원한다.
블루베리를 생산한다.
그러나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좋은 농산물을 생산했다고 해서 경제협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선별해야 한다.
예냉해야 한다.
저장해야 한다.
신선도를 유지해야 한다.
가공해야 한다.
운송해야 한다.
시장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판매대금이 다시 생산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김응수는 7년 전 이미 생산–선별–저장–가공–물류–시장–수익환원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가치사슬을 생각하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주는 지원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경제.
선의에만 기대는 교류가 아니라 참여하는 주체들이 각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
그것이 그가 생각했던 평화경제의 방식이었다.
그는 남북관계가 언제 열릴지를 맞히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언젠가 문이 열리는 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에 가까웠다.
■ 독일에서 발견한 ‘생산과 시장 사이의 힘’
김응수가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주목한 곳은 독일이었다.
그가 독일의 여러 블루베리 농장을 방문하면서 본 것은 단순한 선진 재배기술만이 아니었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생산과 소비시장을 연결하는 구조였다.
김응수가 현장에서 관찰하고 전해 들은 내용을 종합하면, 동유럽 여러 지역의 베리류 생산과 독일의 선별·포장·저장·물류·마케팅 기능, 그리고 서유럽의 소비시장이 하나의 경제 흐름으로 연결돼 있었다.
생산 경쟁력을 가진 지역이 있다.
선별과 저장, 물류와 마케팅에 강점을 가진 지역이 있다.
구매력을 가진 소비시장이 있다.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 하나의 가치사슬을 만드는 구조였다.
김응수는 여기에서 한반도를 보았다.
향후 북측 지역의 농업 생산 가능성.
남한의 재배기술과 묘목, 농자재.
강원도의 식품기업과 가공산업.
남측의 물류 인프라.
그리고 국내외 소비시장.
그는 이것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려 했다.
농산물 경쟁력은 농장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도 신속하게 선별하지 못하면 상품성이 떨어진다.
예냉과 냉장·냉동시설이 부족하면 저장과 장거리 유통이 어렵다.
가공산업이 없으면 원물가격의 변동에 취약하다.
물류망이 약하면 먼 시장으로 나아갈 수 없다.
마케팅 역량이 부족하면 좋은 제품도 소비자를 만나기 어렵다.
김응수가 독일에서 본 것은 결국 생산지와 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역할을 화천과 강원도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왜 블루베리였을까
김응수의 생각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화천에서 오랜 시간 블루베리를 재배하면서 겪은 경험에서 출발했다.
화천의 겨울과 여름이 변하고 있었다.
기후변화는 농업의 지도를 바꾸고 있었다.
남쪽에서 재배되던 일부 작물의 재배 가능지역이 북상하고, 강원도 농업의 작목구조도 달라지고 있었다.
김응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반도 북부지역의 농업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북한의 들쭉에 관심을 가졌다.
들쭉은 북방지역의 대표적인 베리류 자원 가운데 하나다.
그는 기후변화가 한반도 농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남북 접경지역의 기후와 토양조건을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적합한 블루베리 품종과 재배방식을 검증한다면 새로운 농업협력의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블루베리는 품종에 따라 내한성에 큰 차이가 있다.
일교차와 기후조건은 과실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과학적인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북측의 어느 지역에서 어떤 품종이 적합한지, 토양산도와 배수조건은 어떠한지, 관수는 가능한지, 늦서리와 병해충의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연구 없이 사업성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김응수가 2019년 이미 기후변화 시대의 남북 공동 농업이라는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2019년의 생각, 2020년 화천의 마당으로 나오다
2019년 김응수가 글을 통해 제시했던 구상은 이듬해 공개적인 프로젝트로 모습을 드러냈다.
2020년 7월 11일 채향원에서 열린 행사는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를 세상에 알리는 자리였다.
그날 화천의 농장에는 남북교류와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가진 인사와 참가자들이 모였다.
블루베리를 수확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행사의 본질은 단순한 농장 체험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막고 있는 군사적 경계 너머에서 농업을 통한 경제협력이 가능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제안이었다.
김응수의 구상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목표도 담겨 있었다.
당시 제시된 구상에는 화천과 강원도의 육묘 기반을 활용해 매년 20만 주씩 5년간 총 100만 주의 묘목을 준비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확정된 정부사업이 아니라 김응수가 제시한 구상이었다.
그러나 숫자가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그의 생각이 단순히 “언젠가 남북이 함께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묘목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재배기술은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가.
생산된 블루베리는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
김응수는 자신의 방식으로 답을 찾고 있었다.
■ 묘목 한 그루에 담으려 했던 또 하나의 꿈
김응수의 구상에는 경제성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상징적이고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블루베리 묘목 지원을 강원도민과 국민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분단된 강원도의 남과 북을 농업으로 연결하고, 시민들의 참여로 마련된 묘목이 남북교류의 가교가 되기를 바랐다.
그의 상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훗날 여건이 조성된다면 묘목 지원에 참여한 사람들이 북측 농업현장을 방문해 함께 수확하고,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농산물을 구매하며, 주변 지역을 둘러보는 평화농업 관광으로 발전시키는 꿈도 꾸었다.
지금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실제 대북 묘목과 농자재 지원은 남북관계와 관련 법령, 정부 승인절차와 국제적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 생각의 의미는 남아 있다.
김응수는 평화를 거대한 정치적 담론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묘목을 심고, 기술을 나누고, 함께 수확하고, 생산물을 사고파는 생활경제의 문제로 바라봤다.
■ 그의 시선은 이미 해외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응수의 구상이 단순한 이상론으로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블루베리의 해외시장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했다.
일본의 생산과 소비시장에 관심을 가졌고, 한국산 블루베리의 품질과 물류 접근성을 바탕으로 시장 가능성을 살폈다.
2020년에는 강원도산 블루베리 생과의 홍콩 수출도 시작됐다.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가 아직 미래의 구상이었다면, 해외시장을 향한 도전은 현실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김응수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는 먼저 시장을 말하고 나중에 시장을 찾은 것이 아니다.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과 강원도 블루베리의 가능성을 해외시장에서 확인하려 했다.
독일에서는 생산과 유통의 구조를 살폈다.
일본시장에서는 소비 가능성을 보았다.
홍콩 수출을 통해 실제 해외시장 개척에도 나섰다.
이 경험들이 모여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의 시장 논리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2019년과 2020년 당시의 해외시장 상황이 2026년 현재에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볼 수는 없다.
시장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당시의 전망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최신 시장조사다.
일본과 홍콩,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주요 시장의 수입량과 가격, 검역조건과 포장규격, 선호품종과 경쟁국의 상황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생과뿐 아니라 냉동과 가공식품, 식품원료, 천연색소와 기능성 소재 등으로 시장을 세분화할 필요도 있다.
김응수 구상의 본질은 특정 국가에 많이 판매하자는 데 있지 않다.
생산보다 시장을 먼저 생각한다는 데 있다.
■ 블루베리 한 알에서 가공산업을 보다
김응수는 블루베리 생과만 생각하지 않았다.
강원지역 식품 제조기업들과 블루베리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음료와 잼뿐 아니라 다양한 식품과 블루베리를 결합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생각은 분명했다.
생과시장만으로는 생산량 증가와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
원료를 가공해야 한다.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여러 기업이 협력해야 한다.
공동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남북 농업협력이 현실화된다면 생산된 원료를 활용해 강원도의 식품기업들이 제품을 만들고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오늘의 산업정책 언어로 바꾸면 농업과 식품가공, 기업과 물류, 시장을 연결하는 농촌융복합산업과 푸드테크, 공동 브랜드와 수출 플랫폼의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다.
그래서 김응수의 ‘한반도 블루베리’라는 이름은 중요했다.
‘화천 블루베리’에 머물지 않았다.
‘강원 블루베리’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한반도를 향하고 있었다.
■ 7년 뒤, 국가계획이 길을 열었다
그리고 2026년.
제1차 평화경제특구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7년 전 화천의 농업 현장에서 태어난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와 국가의 평화경제특구 정책을 연결해 검토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김응수의 구상이 정부의 기본계획에 영향을 주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두 구상은 독립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2019년의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와 2026년 현재 검토할 수 있는 ‘화천형 그린바이오 평화경제특구’ 구상은 같은 것도 아니다.
전자는 한 사람이 농업 현장과 시장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한 남북 농업경제협력의 선행 구상이다.
후자는 그 문제의식과 지역의 자산을 오늘의 국가정책과 산업환경에 맞게 확장해 검토할 수 있는 지역발전 전략이다.
그러나 두 구상 사이의 정책적 접점은 분명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정부의 계획은 국가의 시선에서 접경지역의 미래를 설계한다.
김응수의 구상은 농업 현장에서 생산과 판매, 물류와 소득의 문제를 고민했다.
출발점은 달랐다.
그러나 두 길은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서 만난다.
평화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경제로 만들 것인가.
■ 화천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화천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단순히 블루베리를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화천의 역할은 더 커야 한다.
기술의 출발지이자 실증지.
연구와 교육의 거점.
기업과 농업인을 연결하는 플랫폼.
가공과 제품개발의 중심.
시장과 생산지를 연결하는 물류 거점.
그리고 향후 여건이 조성될 경우 남북 농업협력의 연결 플랫폼.
화천에서 품종을 실증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농업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스마트 관수와 병해충 예찰기술을 시험할 수 있다.
청년농업인을 교육할 수 있다.
기업과 농가의 계약재배를 연결할 수 있다.
식품기업과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닫혀 있을 때는 화천의 농업과 산업을 키우고, 언젠가 교류의 여건이 조성되면 그동안 축적한 기술과 산업기반을 협력의 자산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평화를 기다리는 동안 산업을 준비하고, 산업을 키우는 동안 평화를 준비하는 구조다.
■ 블루베리는 목적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한 가지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왜 블루베리 하나로 평화경제특구를 이야기하는가.
타당한 질문이다.
블루베리 하나가 화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가 평화경제의 유일한 정답일 수도 없다.
그래서 블루베리는 목적지가 아니라 첫 번째 실증모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블루베리에서 생산과 연구, 가공과 물류, 시장의 연결구조를 검증한다.
그 경험을 다른 베리류와 기후적응형 농작물로 확장한다.
화천 전체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림자원과 연결한다.
천연물과 기능성 소재로 확장한다.
식품과 화장품 원료산업으로 발전시킨다.
산림치유와 웰니스 관광을 연결한다.
평화생태교육과 국제교류를 더한다.
블루베리 한 알에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스마트농업–그린바이오–식품가공–콜드체인–웰니스 관광이 연결되는 산업생태계다.
농업이 생산한다.
연구가 가치를 높인다.
기업이 제품을 만든다.
물류가 시장으로 운반한다.
관광이 소비자와 지역을 연결한다.
그리고 수익이 다시 농가와 기업, 일자리와 지역경제로 돌아간다.
이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남북관계가 닫혀 있어도 시작할 수 있다
평화경제특구를 이야기하면 현실적인 질문이 뒤따른다.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에서 과연 가능한가.
그래서 화천의 계획은 남북관계 개선만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두 개의 길을 동시에 가야 한다.
하나는 화천 자립형 산업성장의 길이다.
스마트농업을 실증한다.
그린바이오 연구를 시작한다.
지역 농산물의 가공률을 높인다.
기업을 유치한다.
제품을 개발한다.
콜드체인을 구축한다.
국내외 시장을 개척한다.
청년을 교육한다.
이 길은 지금 시작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미래 남북협력의 확장 경로다.
먼저 연구한다.
기후와 토양을 분석한다.
품종과 재배기술을 표준화한다.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
여건이 조성되면 지식과 기술을 교류한다.
소규모 공동실증 가능성을 검토한다.
충분히 검증된 뒤 생산과 가공을 연결한다.
그 이후 공동제품과 공동시장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해야 남북관계가 경색돼도 사업 전체가 멈추지 않는다.
화천은 평화를 기다리는 지역이 아니라 평화가 왔을 때 움직일 수 있도록 오늘 준비하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 2020년 여름의 꿈을 2026년의 정책으로
2020년 7월 11일.
화천 채향원의 여름 마당에서 사람들이 함께 꿈꾸었던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국제정세도 복잡하다.
경제협력의 문이 언제 열릴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6년 전 그날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제1차 평화경제특구 기본계획이 발표된 지금, 그 질문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김응수의 구상을 그대로 행정사업으로 옮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7년 전의 생각을 신화로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그가 제시한 문제의식 가운데 오늘에도 유효한 것을 찾아 화천의 미래전략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냉정하게 검토하자는 것이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협력.
생산보다 시장을 먼저 생각하는 농업.
기술과 생산, 가공과 물류, 소비시장을 연결하는 구조.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제관계.
그리고 평화의 문이 열리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지역.
이 철학은 지금도 유효하다.
■ 화천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걸음부터 거대한 개발계획일 필요는 없다.
먼저 조사해야 한다.
화천과 강원도의 블루베리 재배 기반은 지금 어느 정도인가.
농가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어떻게 변했는가.
가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저장과 냉동시설은 충분한가.
국내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해외시장의 가능성은 실제로 있는가.
어떤 기업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
기업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어떤 대학과 연구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가.
전력과 용수, 물류 여건은 충분한가.
어디에 입지해야 환경훼손과 기반시설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
청년은 어떤 일자리를 원하는가.
농업인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싶은가.
조사하고 검증해야 한다.
농업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기업을 만나야 한다.
연구자를 만나야 한다.
시장을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2019년 화천에서 태어난 오래된 구상을 2026년의 정책환경 속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신청서를 먼저 쓰고 자료를 끼워 맞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먼저 검증하고 그 결과로 화천의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 화천에는 이미 씨앗이 있었다
화천은 오랜 세월 경계의 땅이었다.
분단의 경계였다.
전쟁과 평화의 경계였다.
개발과 보전의 경계였다.
국가안보를 위해 많은 것을 감내했고, 각종 규제 속에서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제한받았다.
그러나 이제 화천은 또 다른 경계에 서 있다.
소멸의 길로 갈 것인가.
새로운 산업을 만들 것인가.
농산물 원료를 생산하는 지역에 머물 것인가.
연구하고 가공하고 시장을 만드는 지역으로 나아갈 것인가.
평화를 기다리는 지역으로 남을 것인가.
평화를 준비하는 지역이 될 것인가.
2019년 김응수는 질문했다.
북한에서 생산된 블루베리를 어떻게 소비시키고 그 대가를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
그 질문은 작지 않았다.
생산자가 소득을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기업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시장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어야 협력이 지속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농장에서 시장을 보았다.
시장에서 세계를 보았다.
그리고 세계의 생산과 유통구조를 바라보며 한반도를 생각했다.
2020년에는 그 생각을 화천의 마당으로 꺼내놓았다.
사람을 모았다.
프로젝트를 알렸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도전했다.
그리고 7년이 흐른 2026년.
국가는 평화경제특구라는 새로운 제도적 길을 내놓았다.
국가계획이 김응수의 꿈을 만든 것은 아니다.
김응수의 구상이 국가계획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있다.
국가정책이 나오기 전부터 화천에서는 이미 평화와 경제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한 사람이 있었고, 그 생각을 현실의 프로젝트로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사실은 화천에 중요한 자산이다.
■ 7년 전 화천에서 시작된 질문
한반도 블루베리 프로젝트가 화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의 미래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7년 전 김응수가 던졌던 질문도 결국 여기에 닿아 있었다.
“어떻게 해야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가.”
이제 그 질문은 화천에 돌아왔다.
제1차 평화경제특구 기본계획이라는 새로운 제도적 환경 앞에서 화천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다른 지역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화천에서 이미 태어난 생각과 화천이 가진 농업, 산림, 물, 생태, 평화자원을 연결해 화천만의 길을 만들 것인가.
2019년 한 사람이 심은 생각의 씨앗.
2020년 여름 화천의 마당에서 세상에 내놓은 꿈.
2026년 국가의 평화경제특구 기본계획.
그리고 2035년을 향한 화천의 선택.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남았다.
우리는 7년 전 이곳에서 태어난 꿈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국가가 마련한 새로운 기회의 문 앞에서 화천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한 알의 블루베리는 작다.
그러나 그 작은 열매에서 농업과 기술을 연결할 수 있다.
농업과 기업을 연결할 수 있다.
생산과 가공을 연결할 수 있다.
화천과 세계시장을 연결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여건이 허락한다면 남과 북을 연결하는 작은 경제적 가교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7년 전 화천에서 시작된 꿈이었다.
이제 그 꿈을 다시 꺼내볼 시간이다.
평화를 기다리지 않고 준비하는 화천.
블루베리 한 알에서 산업을 만들고,
산업에서 군민의 소득을 만들며,
서로의 경제적 이익 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준비하는 길.
어쩌면 화천의 평화경제는 이미 7년 전, 간동면 유촌리의 작은 블루베리 농장에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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