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철조망을 걷고 군민에게 문을 열다"
제2하나원, 분단의 공간에서 화천의 미래를 여는 사회통합 플랫폼으로
폐쇄 검토됐던 천억 원 국가시설, 지역과 함께하는 열린 공동체로 대전환…김영일 원장 "2012년 개원 이후 가장 기쁜 날"
철조망은 그대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안의 철학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2일 오후 화천군 간동면 제2하나원 대강당.
무대 위 대형 현수막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하나원과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문화한마당.'
2012년 문을 연 이후 14년 동안 북한이탈주민 정착교육시설로 운영돼 온 제2하나원 역사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문구였다.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국가시설.
오랫동안 일반 주민들에게는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공간.
그곳이 이제 처음으로 지역사회와 손을 맞잡기 시작했다.
이날 열린 문화한마당은 단순한 공연행사가 아니었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태어난 국가시설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열린 공동체 공간으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김영일 제2하나원장이 있었다.
"오늘이 가장 기쁜 날입니다"…14년 만에 달라진 제2하나원의 존재 이유
김영일 원장은 환영사에서 뜻밖의 고백부터 꺼냈다.
"2012년 12월 화천 하나원이 개원했습니다. 오늘 2026년 7월 2일이 제 생각에는 가장 기쁜 날이 아닌가 합니다."
왜 하필 이날이 가장 기쁜 날일까.
그는 곧바로 이유를 설명했다.
"화천 하나원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열린 공간으로 화천군 주민 여러분과 함께하는 시설로 거듭나는 출발점이 되는 날입니다."
이 한마디는 이날 행사의 모든 의미를 담고 있었다.
문화공연도, 건강검진도 결국은 하나의 과정이었다.
진짜 변화는 제2하나원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폐쇄될 뻔했던 천억 원 국가시설…운명을 바꾼 한 번의 방문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김 원장은 지난 4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제2하나원을 방문했을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까지 내부에서는 시설 폐쇄도 검토되고 있었다.
최근 수년간 북한이탈주민 입국 인원이 크게 감소하면서 교육 기능을 축소하고 시설을 재편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관은 현장을 둘러본 뒤 다른 판단을 내렸다.
"천억 원이 투입된 시설을 그렇게 폐쇄하는 것보다 화천군민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그 한마디가 방향을 바꾸었다.
제2하나원은 더 이상 '닫힌 교육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회통합 공간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탈북민 감소가 만든 새로운 과제…'교육시설'에서 '사회통합 플랫폼'으로
이 같은 변화는 시대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북한이탈주민 입국은 2009년 2,914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꾸준히 감소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연간 수십 명 수준까지 줄었고, 지난해에도 223명에 머물렀다.
교육생 감소는 하나원의 역할에도 변화를 요구했다.
통일부는 안성 본원을 중심으로 교육 기능을 재편하는 한편, 화천분소는 북한이탈주민 지원 기능을 유지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활용하는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최근 국가보안시설 지정이 해제된 것도 이러한 정책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국가중요시설 지위는 유지돼 보안과 안전 체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한 달 만에 현실이 된 변화…'보고'에서 '실천'으로
변화는 놀라울 만큼 빨랐다.
김 원장은 6월 2일 통일부에 '하나원 개방 및 지역주민 소통사업 추진계획'을 처음 보고했다.
이어 6월 16일에는 간동면 이장단의 의견을 반영한 보완 계획을 다시 제출했다.
그 자리에서는 당시 군수 당선인이던 김세훈 군수와 정동영 장관이 직접 통화하며 화천군과 통일부가 함께 평화와 지역발전을 위해 협력하자는 공감대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주민 300여 명이 참여한 첫 문화한마당이 현실이 됐다.
행정이 계획을 넘어 실행으로 이어지는 속도는 그만큼 빨랐다.
체육관·도서관·의료·문화…군민과 함께 쓰는 국가시설
김 원장이 이날 공개한 구상은 단순한 시설 개방을 넘어선다.
실내체육관과 운동장, 도서관, 강당 등 다양한 시설을 주민들과 함께 활용하고, 서울의 문화예술 인프라를 연계한 공연도 정기적으로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축제 기간에는 지역 숙박업계와 충분히 협의하는 것을 전제로 일부 숙박시설 활용도 검토하고 있다.
특히 현재 부속시설인 '하나의원'을 일반 의료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지역 의료 접근성 향상이라는 새로운 가능성도 제시했다.
실제로 이날 행사에서는 혈당·콜레스테롤·빈혈 검사, 치과 구강검진, 한방 건강관리 교육 등 건강지원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돼 주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화천 새로운마루'…새 이름에는 새 철학이 담겼다
제2하나원은 새로운 이름도 준비하고 있다.
가칭은 '화천 새로운마루'.
새롭게 태어나는 공간이라는 의미와 지역성을 함께 담은 이름이다.
조직 역시 '사회통합원'으로의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명칭 하나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탈주민만을 위한 시설에서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통합 플랫폼으로 역할을 넓히겠다는 선언이다.
문화로 만나고, 건강으로 이어진 첫 걸음
이날 무대에서는 탈북민 공연단이 '반갑습니다'와 '그리운 금강산' 등을 선보였다.
이어 주민들과 함께 남북한 생활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한편에서는 건강검진이 진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연과 대화가 이어졌다.
건강으로 만나고, 문화로 소통하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화천이 품게 될 새로운 가능성
김영일 원장은 이날 화천군과 통일부가 '평화'라는 공통의 가치를 함께 실현해 갈 수 있다는 기대도 밝혔다.
김세훈 군수가 제시한 평화도시 구상과 통일부의 평화경제특구 정책이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직 구상 단계이지만, 제2하나원이 단순한 교육시설을 넘어 접경지역 평화와 사회통합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철조망 너머에서 시작된 새로운 역사
제2하나원은 분단이 만든 시설이다.
그 존재 이유는 오랫동안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사회 정착을 돕는 데 있었다.
그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가 더해졌다.
지역과 함께하는 공간.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
건강을 함께 나누는 의료.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사회통합.
철조망은 보안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까지 가둘 수는 없다.
2026년 7월 2일.
제2하나원은 처음으로 지역사회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날 열린 문화한마당은 공연이 열린 하루가 아니라, 국가시설이 지역의 자산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날, 그리고 분단의 공간이 평화와 통합의 공간으로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