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신문 특별기획】
시험지를 빼앗긴 소년, 화천의 미래를 쓰다
최문순 군수 50년 공직 마침표…12년 군정이 남긴 것은 '사람을 키운 도시'였다
"돈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954년,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한 소년은 중학생 시절 평생 잊지 못할 일을 겪었다.
월납금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빼앗기고 교실 밖으로 나와야 했다.
억울했다.
분했다.
소년은 홀로 북한강변에 앉아 세상을 향해 목놓아 울었다.
그날 마음속에 새긴 다짐은 단 하나였다.
'돈이 없어도 누구나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다.
소년은 9급 공무원이 되었고, 다시 군수가 되었으며, 결국 그 다짐을 화천의 정책으로 현실로 만들었다.
26일 오후 화천커뮤니티센터.
민선 6·7·8기 12년을 이끌어 온 최문순 화천군수가 퇴임식을 끝으로 1977년부터 이어진 50여 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퇴임은 끝이었지만, 그가 남긴 군정의 흔적은 화천의 미래를 향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소년의 꿈은 왜 교육정책이 되었나
최문순 군정을 이야기하면서 교육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시작이 행정이 아니라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최 군수는 퇴임사에서 어린 시절 시험지를 빼앗겼던 기억을 담담히 꺼냈다.
그 경험은 이후 평생 그의 마음속에 남았다.
공부하고 싶은 아이가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은 군수가 된 뒤 화천군의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민선 6기 출범과 함께 화천군정의 최우선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만들기.'
이 목표는 단순한 구호에 머물지 않았다.
공공산후조리원 건립을 시작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고, 배우고, 사회로 나갈 때까지 이어지는 생애주기별 교육복지 체계가 하나씩 갖춰졌다.
전국 최초로 지역 대학생들에게 4년 동안 등록금 실납입액 전액을 지원했고, 대학생 거주비는 매달 최대 60만원까지 지원했다.
세계 100대 대학 유학생에게는 등록금과 연간 최대 2,400만원의 거주비를 지원하는 파격적인 정책도 시행했다.
해외 어학연수와 배낭연수 지원도 뒤따랐다.
처음에는 "가능하겠느냐", "포퓰리즘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 군수는 흔들리지 않았다.
퇴임사에서 그는 "군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마음과, 돈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만을 떠올렸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나타났다.
화천의 학생들은 국내 주요 대학은 물론 뉴욕대학교, 워싱턴대학교, 영국 런던대학교, 중국 푸단대학교 등 세계적인 대학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최 군수는 "20년 뒤 이 아이들이 성장하면 화천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도시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돌봄도 교육이었다
교육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화천군은 부모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돌봄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국내 최초 지방자치단체 직영 초등 온종일 돌봄시설인 화천커뮤니티센터는 그 상징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방과후 돌봄은 물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누리고 있다.
맞벌이 부모들은 돌봄 부담을 덜었고, 사교육비 부담도 크게 줄었다.
화천커뮤니티센터는 단순한 복지시설이 아니라 교육과 돌봄이 결합된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으며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군정 철학은 이처럼 제도로 완성됐다.
50년 공직, '군민의 삶'을 행정의 중심에 두다
1977년 10월.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한 공직생활은 어느덧 반세기를 넘어섰다.
행정은 그에게 직업이 아니라 삶이었다.
군수가 된 이후에도 그는 집무실보다 현장을 더 많이 찾았다.
군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행정의 출발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퇴임사에서 그는 "군수는 행정 서류에 사인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가슴으로 품고 현장에서 돌보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그 말은 12년 군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한 문장이었다.
퇴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26일 열린 퇴임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50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함께 울고 웃었던 군민들.
묵묵히 군정을 뒷받침한 공직자들.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던 기관·사회단체 관계자들.
최 군수는 군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함께해서 행복했고 든든했다. 그동안 빚진 행복은 앞으로 천천히 갚겠다"고 말했다.
공직자의 직함은 내려놓았지만, 화천군민으로서의 삶은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그가 남긴 교육의 씨앗은 여전히 화천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소년의 눈물로 시작된 약속은 이제 한 도시의 미래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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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신문 특별기획 ②】
"가장 큰 위기 앞에서도 화천은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ASF·27사단 해체…12년 군정은 위기의 시간을 어떻게 기회로 바꿨나
민선 6기의 성과가 결실을 맺기 시작할 무렵, 화천은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파고와 마주했다.
코로나19였다.
지역경제는 얼어붙었고 사람들의 일상은 멈췄다.
화천의 겨울을 먹여 살리던 산천어축제는 끝내 열리지 못했다.
매년 축제를 준비하던 상인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숙박업과 음식업, 관광업계는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화천의 겨울은 그렇게 처음으로 멈춰 섰다.
그러나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양돈농가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평생 가족처럼 키운 돼지를 스스로 땅에 묻어야 했던 농민들의 눈물은 지역사회 전체의 아픔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국방개혁에 따라 사내면 육군 제27사단이 해체되면서 지역경제와 공동체는 또 한 번 흔들렸다.
군 장병과 가족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상권 위축과 인구 감소라는 현실로 이어졌다.
최문순 군수는 퇴임사에서 이 시기를 "6·25전쟁 이후 가장 큰 위기"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군정은 매 순간 시험대 위에 올라 있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반드시 열린다"
위기는 피할 수 없었지만, 대응은 선택이었다.
화천군은 방역과 지역경제 회복을 동시에 추진했다.
군민들은 서로를 지켰고 공직자들은 현장을 지켰다.
축제는 멈췄지만, 화천은 멈추지 않았다.
최 군수는 공직자들에게 "위기일수록 행정은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현장을 중심으로 군정을 이끌었다.
그 시간은 결국 헛되지 않았다.
3년 만에 다시 열린 2023 화천산천어축제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재개된 축제가 아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국내 유일의 글로벌 겨울축제로 도약하며 화천은 세계를 향해 다시 문을 열었다.
산천어축제, 지역축제를 넘어 세계와 만나다
최문순 군정은 축제를 '행사'가 아니라 '산업'으로 바라봤다.
지난 12년 동안 화천군은 눈과 얼음이 없는 동남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대형 여행사를 직접 찾아다니며 산천어축제를 알렸다.
축제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도 해외 홍보는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태국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겨울을 경험하기 위해 화천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늘었다.
또한 중국 하얼빈 빙등축제, 일본 삿포로 눈축제, 캐나다 겨울축제, 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마을 등 세계적인 겨울축제와의 교류와 협업을 이어가며 콘텐츠를 발전시켰다.
지역축제였던 화천산천어축제는 이제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겨울축제로 성장했다.
이는 단순한 관광객 증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역의 브랜드 가치가 세계 속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장동력, 파크골프에서 답을 찾다
위기 속에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화천군은 2021년 하남면 북한강변에 산천어 파크골프장을 조성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파크골프를 지역의 핵심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화천은 전국 메이저급 파크골프대회를 잇달아 유치했고, 전국 최고 수준의 시설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파크골프의 수도'라는 새로운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전국대회가 열릴 때마다 수천 명의 선수와 동호인, 가족들이 화천을 찾아 숙박업과 음식업, 전통시장 등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파크골프는 더 이상 생활체육에 머물지 않았다.
관광이 되었고, 산업이 되었으며, 지역경제를 이끄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됐다.
동시에 군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확산되면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민선 8기의 마지막 결실, 기본소득
퇴임을 불과 보름 앞둔 지난 6월 11일.
화천군은 정부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역에 추가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민선 8기의 마지막이자 가장 상징적인 결실이었다.
오는 8월부터 모든 군민은 1인당 월 15만 원의 화천사랑상품권을 지급받게 된다.
최 군수는 이를 단순한 지원정책으로 보지 않았다.
지역 안에서 소비를 늘리고, 골목상권을 살리며, 지방소멸 시대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환점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교육과 돌봄으로 사람을 키우고, 축제와 파크골프로 지역경제를 일으킨 데 이어, 기본소득으로 지역순환경제를 완성하는 퍼즐을 맞춘 셈이다.
그는 퇴임을 앞두고 "화천군 공무원들의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며 모든 공을 공직자들에게 돌렸다.
위기는 지나갔지만, 남은 것은 시스템이었다
코로나19도 지나갔고, ASF도 지나갔다.
27사단 해체라는 변화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화천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길을 찾았다.
교육은 더욱 촘촘해졌고, 축제는 세계와 연결됐으며, 파크골프는 도시의 새로운 경쟁력이 됐다.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정책 실험까지 시작됐다.
12년 군정은 화려한 구호보다 위기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것이 최문순 군정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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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신문 특별기획 ③】
"군수는 사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자리였습니다"
퇴임사에 남은 이름 없는 군민들…최문순 군정 12년을 말해주는 가장 아름다운 기록
퇴임사를 읽다 보면 의외의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최문순 군수는 자신의 업적을 오래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을 이야기했다.
그것도 이름 없는 평범한 군민들이었다.
12년 동안 군정을 이끌었던 한 사람의 기억 속에는 거창한 사업보다 한 학생의 부탁이, 한 어르신의 손길이, 한 아이의 편지가 더 오래 남아 있었다.
그것이 이번 퇴임사를 특별하게 만든 이유였다.
"군수님, 수영장 하나만 지어주세요."
최 군수는 퇴임사에서 오래전 자신을 찾아왔던 한 초등학생을 떠올렸다.
"수영장을 꼭 지어 달라."
아이의 바람은 단순한 민원이 아니었다.
지역 아이들도 도시 아이들처럼 배우고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작은 외침이었다.
군정은 그 목소리를 흘려듣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정책을 고민했고, 교육과 문화, 체육시설을 하나씩 채워 나갔다.
행정은 숫자로 평가되지만, 정책은 결국 한 아이의 꿈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노란 목도리 하나에 담긴 군민의 마음
겨울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직접 뜬 샛노란 목도리를 최 군수의 목에 둘러주며 말했다.
"감기 걸리지 말고 건강하세요."
값비싼 선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떤 훈장보다 따뜻한 마음이었다.
최 군수는 그 목도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군민과 행정의 관계는 서류와 민원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기억이었다.
명문대 합격증보다 더 기뻤던 감사 인사
교육정책은 예산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사람으로 완성됐다.
세계적인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이 찾아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했다.
돈이 없어 시험지를 빼앗겼던 소년.
그리고 이제는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
그 변화는 단순한 장학사업의 성과가 아니었다.
한 세대의 삶을 바꾸는 교육정책의 결실이었다.
최 군수는 퇴임사에서 "20년 후 화천은 지금과 전혀 다른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지금 세계를 향해 꿈을 키우는 화천의 아이들이 있다.
폭우 속에서 마주한 떨리는 입술
행정은 축제의 박수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아픔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최 군수는 폭우로 삶의 터전을 잃고 주저앉아 울음을 삼키던 한 어르신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그 순간 군민 곁에 누가 있었는지는 오래 남는다.
그래서 그는 현장을 가장 먼저 찾았다.
군수의 자리는 책상보다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그의 행정철학은 이런 순간마다 더욱 분명해졌다.
빨간 내복을 들고 찾아온 에티오피아 청년
퇴임사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국경을 넘어 이어진 인연이었다.
화천군 장학사업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의 후손.
그는 학업을 이어가 대학 교수가 되었고, 어느 날 빨간 내복을 선물로 들고 화천을 찾았다.
"고맙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긴 세월이 담겨 있었다.
장학사업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나라와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고 있었다.
최 군수는 이들이 의사와 변호사, 교수로 성장해 조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뜻깊은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췌장암 수술 한 달 만에 다시 얼음판으로
군정에는 알려지지 않은 시간도 있었다.
최 군수는 췌장암 수술을 받은 지 한 달여 만에 다시 산천어축제장을 찾았다.
얼음판을 둘러보는 그를 바라보며 공직자들은 혹시 쓰러질까 걱정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 장면을 퇴임사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이유는 축제 때문이 아니었다.
곁을 지켜준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12년 군정은 군수 한 사람의 성과가 아니라 수많은 공직자의 헌신이 함께 만든 시간이었다.
11월이면 도착하던 아이들의 편지
매년 11월.
드림스타트와 아동복지센터 아이들은 '떡볶이 토크쇼'에서 작은 소망을 적은 편지를 군수에게 건넸다.
그 편지들은 민원서류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최 군수는 그 편지들을 퇴임사 마지막까지 기억했다.
12년 동안 가장 소중했던 것은 거대한 사업보다 아이들의 웃음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군민의 삶을 가슴으로 품었습니다"
퇴임사를 마무리하며 최 군수는 이렇게 말했다.
"군수는 행정 서류에 사인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가슴으로 품고 현장에서 돌봐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문장은 12년 군정을 가장 잘 설명한다.
교육도 사람을 위한 것이었고,
돌봄도 사람이 중심이었다.
축제도 지역 주민의 삶을 위한 것이었으며,
파크골프도 결국 지역경제와 공동체를 위한 선택이었다.
행정의 중심에 사람이 있었기에 화천군정의 정책들은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퇴임식은 끝났지만, 이름 없이 퇴임사에 등장한 수많은 군민들의 이야기는 오래 남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최문순 군정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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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신문 특별기획 ④】
"한 시대는 끝났지만, 화천의 미래는 계속된다"
최문순 군정 12년이 남긴 것…정책을 넘어 도시의 방향을 바꾸다
1977년 10월.
아홉 계급 가운데 가장 낮은 9급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한 청년은 50여 년 뒤, 화천군수직을 내려놓으며 다시 평범한 군민으로 돌아갔다.
공직생활은 끝났지만 그의 12년 군정은 하나의 기록으로 남았다.
기록은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가치가 드러난다.
화천 역시 마찬가지다.
민선 6기부터 8기까지 이어진 12년은 단순히 사업을 많이 추진한 시간이 아니라, 화천이라는 도시가 어디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사람'을 중심에 둔 군정
12년 동안 추진된 정책은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인다.
공공산후조리원.
전국 최초 대학등록금 실납입액 전액 지원.
대학생 거주비 지원.
세계 100대 대학 유학 지원.
해외 어학연수와 배낭연수.
화천커뮤니티센터.
산천어축제.
파크골프.
공공임대주택.
농어촌 기본소득.
하나씩 보면 각각의 정책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모든 정책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장하고, 배우고, 취업하고, 가정을 이루고, 노후를 보내기까지 생애 전반을 행정이 함께하겠다는 철학이 일관되게 이어졌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였고, 돌봄은 부모를 위한 정책이었으며, 파크골프는 지역경제와 주민 건강을 함께 살리는 전략이었다.
산천어축제는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지역경제를 지키는 산업이었고, 기본소득은 지방소멸 시대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한 도전이었다.
각각의 정책은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위기 속에서 더 분명해진 행정의 역할
12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지역경제를 멈춰 세웠고,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농가를 무너뜨렸다.
27사단 해체는 지역사회의 구조를 흔들었다.
집중호우는 삶의 터전을 위협했다.
그러나 위기는 행정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정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됐다.
산천어축제는 세계를 향해 다시 일어섰고, 파크골프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았으며, 기본소득 시범지역 선정은 화천의 미래를 향한 또 다른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위기를 지나며 화천는 단순히 회복한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성장했다.
군민과 함께 만든 12년
최문순 군수는 퇴임사에서 공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군민들의 믿음이 있었기에 끝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화천군 공무원들을 믿었다."
"함께해서 행복했고 든든했다."
그의 퇴임사에는 '나'보다 '우리'라는 말이 더 자주 등장했다.
군정의 성과를 혼자의 업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군민과 공직자, 지역사회가 함께 만든 결과라고 표현했다.
그 겸손한 고백은 오히려 지난 12년의 무게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정책은 끝나도 철학은 남는다
행정은 사람과 함께 변한다.
군수는 바뀌고 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도시를 움직이는 철학은 오래 남는다.
교육을 미래에 대한 투자로 바라본 시선.
아이를 지역의 희망으로 키우겠다는 의지.
축제를 문화와 관광산업으로 확장한 발상.
생활체육을 지역경제와 연결한 전략.
농어촌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정책 실험.
이러한 선택들은 앞으로도 화천 발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준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역사는 결과만 기록하지 않는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함께 기록한다.
최문순 군정 12년 역시 그런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북한강변에서 시작된 약속
퇴임사를 모두 읽고 나면 결국 다시 한 장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중학생이던 한 소년이 월납금을 내지 못해 시험장을 나와 북한강변에 홀로 앉아 있던 모습이다.
그날의 눈물은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교육정책이 되었고, 장학사업이 되었으며, 세계 명문대에서 공부하는 화천의 학생들로 이어졌다.
한 사람의 어린 시절이 한 도시의 정책이 된 것이다.
행정은 숫자로 평가받지만, 정책은 결국 사람의 삶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퇴임은 끝이 아니라 기록의 시작
26일 퇴임식에서 최문순 군수는 군민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빚진 행복은 앞으로 천천히 갚겠습니다."
짧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말에는 공직자로 살아온 반세기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직함은 내려놓았지만 그는 여전히 화천군민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지난 12년 동안 심어 놓은 교육의 씨앗은 아이들의 꿈으로 자라고, 파크골프장은 새로운 활력으로 이어지며, 산천어축제는 겨울마다 세계인을 맞이할 것이다.
올해 8월부터 시작되는 농어촌 기본소득 역시 또 다른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한 시대의 군정은 막을 내렸지만, 그 시간 동안 구축한 제도와 기반은 앞으로 화천의 미래를 움직이는 자산으로 남는다.
행정은 끝났지만 기록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기록의 첫 장에는 이런 문장이 남을 것이다.
'시험지를 빼앗겼던 소년은, 끝내 화천의 미래를 써 내려갔다.'
【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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