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역 자영업 벼랑 끝인데… 행정, 더는 방관자여선 안 된다
화천·철원·양구 등 매출 감소폭 일반 지역 웃돌아
규제·관리 넘어 ‘맞춤형 생존 사다리’ 놓는 문제 해결 파트너 돼야
강원 접경지역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강원도 내 폐업 건수는 5,966건에 달했다. 이미 위기 신호는 충분히 뚜렷하지만, 특히 더 심각한 곳은 화천·철원·양구 같은 접경지역이다. 본보 분석 결과 이들 지역의 매출 감소폭은 일반 지역보다 더 컸고, 군부대 이전과 인구 감소, 소비 위축이 겹치면서 상권의 버팀목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더 이상 통상적인 경기 부진으로 볼 수 없다. 접경지역 자영업 위기는 지역경제의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에 가깝다. 손님이 줄고, 매출이 급감하고, 폐업이 이어지는데도 행정이 기존의 관리 방식과 보여주기식 지원에 머문다면 사태는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발성 사업이 아니라, 자영업자가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치는 접경지역 맞춤형 ‘생존 사다리’다.
문제는 현장의 절박함에 비해 정책 대응이 여전히 피상적이라는 점이다. 일부 금융 지원과 시설 개선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어려운 영세 상인들은 정책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담보가 부족하고 신용이 낮은 소상공인은 지원에서 밀려나고, 외관 정비만으로는 사라진 손님을 되돌릴 수 없다. 폐업을 결심한 뒤에도 재기나 전업을 체계적으로 돕는 시스템은 충분하지 않다. 위기의 깊이에 비해 대책은 지나치게 얕다.
행정의 역할 역시 바뀌어야 한다. 접경지역처럼 구조적 불리함이 큰 곳에 획일적 기준을 들이대며 관리·감독에만 치중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 접경지역에 필요한 행정은 단순히 규정을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 현실에 맞는 해법을 함께 설계하는 문제 해결의 파트너다. 다시 말해, 자영업자들이 버티고 회복하고 다시 설 수 있도록 단계별 사다리를 놓는 적극 행정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그 첫 번째 사다리는 금융 안전망이어야 한다. 현재의 이차보전 사업은 일정 부분 도움이 되지만, 정작 절박한 영세 소상공인일수록 신용등급과 담보 문제에 막혀 정책 금융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접경지역 위기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제는 금융 지원의 문턱을 실질적으로 낮춰야 한다. 지자체가 일정 부분 위험을 분담하는 특례성 보증을 확대하고,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을 넓혀야 한다. 상환 능력이 무너진 이들에게는 일률적 회수보다 원리금 유예와 채무 조정을 통해 숨통을 틔워주는 장치가 먼저 작동해야 한다. 쓰러진 뒤 정리하는 행정이 아니라, 쓰러지기 전에 버틸 수 있게 붙잡아주는 행정이 필요하다.
두 번째 사다리는 소비를 붙잡는 체류형 경제 기반이다. 접경지역 상권이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소비 인구 자체가 줄고, 남아 있는 소비마저 외부로 빠져나간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점포 시설만 조금 정비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핵심은 지역 안에서 머물고, 즐기고, 소비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장병과 지역 주민, 방문객이 외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민·군 복합 문화 콘텐츠를 확충하고, 지역화폐 인센티브를 강화해 소비가 지역 안에서 순환되도록 해야 한다. E-스포츠 공간, 복합 문화 카페, 청년 친화형 여가 콘텐츠 같은 새로운 거점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상권을 지탱하는 체류 장치가 될 수 있다. 접경지역 정책은 이제 ‘시설 지원’에서 ‘소비 생태계 조성’으로 옮겨가야 한다.
세 번째 사다리는 질서 있는 퇴로와 재기 지원이다. 모든 점포를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폐업이 곧 추락을 뜻해서는 안 된다. 폐업 이후 생계, 전업, 재취업까지 연결되지 못하면 한 번의 폐업은 개인의 실패를 넘어 지역경제의 상실로 이어진다. 따라서 철거비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폐업 예정 소상공인에게 전업 컨설팅과 재취업 교육, 재창업 정보 제공을 묶은 패키지형 지원이 필요하다. 나아가 공공이 유휴 점포를 확보해 청년 창업자나 업종 전환 희망자에게 낮은 부담으로 제공하는 상권 순환 시스템도 검토해야 한다. 버티는 사다리만큼이나 다시 일어서는 사다리도 중요하다.
결국 접경지역 자영업 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매출 감소가 아니다. 이는 인구 감소와 군부대 이전, 소비 유출, 금융 취약성이 한꺼번에 맞물린 구조적 위기다. 구조적 위기에는 구조적 대책이 따라야 한다. 행정이 여전히 ‘규제’와 ‘관리’의 언어에 머문다면 접경지역 상권은 더 빠르게 공동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행정이 방관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런데도 뒤에서 통계만 관리하고, 제도만 설명하고, 제한만 반복하는 태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와 유관 기관은 지금이라도 접경지역 현실에 맞는 생존 사다리를 촘촘히 다시 놓아야 한다. 금융에서 버티게 하고, 소비에서 숨 쉬게 하며, 폐업 이후에도 다시 설 수 있게 돕는 전 과정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손님이 없다”는 자영업자의 절규는 개인의 하소연이 아니다. 그것은 접경지역 붕괴를 알리는 경고음이다. 더 늦기 전에 행정은 태도를 바꿔야 한다. 접경지역 자영업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지원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맞춤형 생존 사다리다.
【김용식】
《화천신문 http://www.inewspeople.com/》